조아툰 <애신록> 전하와 함께 하는 알콩달콩 BL 이야기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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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서안. 과거를 보러 수도에 가는 길입니다. 더워도 너무 더워서 과거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지경이죠. 게다가 과거를 본다고 생각하니 긴장까지 저를 괴롭힙니다. 거대하고 무거운 해가 저를 짓누르는 기분이네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 과거 길에 잠깐 일시 정지 버튼을 눌러놓고서는 목을 축이기 위해 주막으로 갔습니다. 시원한 물이랑 청주를 주문했죠. 신나게 쉼표를 즐기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저에게 말을 걸더라고요. 시험 보러온 공자 같은데 술을 마시냐면서요. 남자는 제가 취한 정신으로 시험을 보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걱정 같은 걸 해주었지만 그건 시간 낭비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말. 술. 이거든요! 하하하. 한참 남자와 대화를 하던 저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가 그냥 남자가 아니라 전하라는 것을요.
전하 앞에서 그런 실례를 범했으니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과거 시험에 전하와 주막에서 만나면 어쩔 것이냐는 질문이나 평가 따위는 없겠지만 조금 그렇잖아요? 2020년에 사는 여러분들로 비유를 하면 이런 거죠. 국회의원이 되는 게 꿈인데, 대통령 앞에서 대통령도 몰라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꺼내면서 추태를 부렸던 것. 세세하게 따지만 다른 점들이 많겠지만 아무튼 저는 정말 충격이었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제가 공부에 빠져 살던 시간 덕분에 장원급제했다는 것. 전하는 주막에서의 일을 잊은 것처럼 저에게 잘해주셨습니다.
이곳에 사람들은 모두 재밌습니다. 세자 저하는 자신을 호위하는 무사와도 아주 친하게 지내시고 있습니다. 마치 벗처럼요. 그런 둘의 사이를 전하 역시 기쁘게 보시는 것 같고요. 뭐, 이래저래 벗이 많으면 좋은 것이죠.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기쁠 때 그 행복이 배가 되도록 나눌 수 있고요. 근데 전하와 저하 근처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두 분이 심상치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대체 어디가 심상치 않은 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주의해서 보라고도 하고 갈라놓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대요. 저하와 호위무사의 계급 차이 때문에 갈라놓아야 한다는 건지. 이제 막 전하 옆에서 도움이 되려는 저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전하는 장난 치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아니 글쎄 저번에는 도깨비로 변장을 해서 저를 놀래켰더라니까요.
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가진 건 몸뚱아리밖에 없다고 애원을 했습니다. 도깨비로 변장한 전하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정말 저를 잡아갈 도깨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저희 둘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대체 방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서요. 무슨 일이 있기는요. 장난에 제가 호되게 당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걱정했던 부분은 무엇일까요. 안으로 들어가서 어서 말려야 한다고, 소문이 나면 안 된다고도 하던데 도깨비 분장을 하고 장난친 것이 그리 난리 칠 일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뭐, 전하 주변 사람들은 작은 일만 해도 체면을 못 지켰다고 쓰러지려고 하지만요.
어쩌다 들은 이야기인데 전하가 저에 관해서 이야기하실 때 귀엽다는 표현을 쓰셨다고 해요. 제가 어디가 귀여울까요? 저는 다 큰 성인인데요. 물론 책 읽고 공부하는 것만 좋아해서 몸이 좋지는 않겠지만 성인 남자라고요. 다행인 건 귀엽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면 꼭 놀리는 것 같아서 모르겠지만 전하가 귀엽다고 해줄 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뭔가 보탬이 되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이왕이면 공부를 잘한다거나, 아는 지식이 많다고 칭찬을 해주시면 좋겠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께 이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이 순간에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와서 입술이 춤을 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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