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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앰 어 히어로(アイアムアヒ-ロ-)]
하나자와 켄고(花沢健吾) | 쇼가쿠칸(小学館) / 대원씨아이
“한순간에 세상이 바뀌어버렸다구. 너희가 만든 사회는 변기에 떠내려갔어요. 아무한테도 폐가 되지 않도록 숨도 적게 쉬고, 도로는 길 가장자리 모서리로만 걷고, 주자이거우(九寨溝, 중국 쓰촨성에 있는 자연보호구) 급의 투명도로 살아온 나보다, 썩은 민폐덩어리 깡패 자식이 취직했다는 것만으로 졸업식 때 선생님이 펑펑 울더구만. 그런 똥덩어리가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세상 따윈 엿이나 잡수라 그래.” – <아이 앰 어 히어로> 7권 中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으로 들썩이던 20세기말로부터 10년도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세기말’의 불안과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2년을 또 다른 세기말로 규정했던 몇몇 종말론이 모두 허위로 결론 났음에도 종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또 다른 세기말을 연이어 만들어낸다.
실제로 인류가 존속하는 한 결코 끝나지 않을 전쟁이나 현대 과학문명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 등은 언제고 멸망을 염려해야 하는 인류의 가혹한 운명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지 않던가. 덕분에 살아있는 시체, 즉 ‘좀비’를 내세운 작품들이 살아남은 소수의 서바이벌에서 좀비에게 점령당한 세기말 풍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새로운 형태의 종말을 은유하게 된 것도 당연한 수순처럼 다가온다. 다양한 가지를 뻗어 여러 장르로 이식되고, 나아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한 오늘날의 좀비는 이제 묵시록 위에 걸터앉아 인류의 본질을 묻는다. 너희 인간이란 존재는 도대체 무언지, 정녕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지를.
2011년 대지진을 통해 더욱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듯, 늘 잠재적 재난과 맞닿아 삶을 영유하는 일본에 있어 종말이란 결코 낯선 가정에 그치지 않는다. 유독 재난과 종말을 소재 로 한 걸작들이 일본에 많다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나자와 켄고의 <아이 앰 어 히어로>는 일본의 세기말 장르 계보를 잇는 걸작으로, 죽은 후에도 움직여 사람을 물어뜯는 괴질병으로 인해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현대 일본을 그린다. ‘다발성 장기부전 및 반사회성 인격 장애’로 명명된 증상에 감염된 사람은 일반적 의미의 ‘좀비’의 형상을 띈다. 그러나 느릿느릿 움직이며 서서히 목을 죄어오던 조지 A. 로메로풍의 좀비와는 전혀 다르다. 고통을 느낄 수 없어 자기 몸이 손상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포함해, 오히려 인간 이상의 운동신경을 가진 것. 사지(四肢)로 걸으며 맹렬히 달려들어 사람을 뼈째 베어 무는 흉포함뿐만이 아니다. 마치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타성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은유하듯, 죽어서도 평소 자신이 하던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음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 앰 어 히어로>는 새로운 형태의 좀비 증식을 통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일본사회를 가정함으로써 현대 일본이 떠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그로테스크하게 펼쳐낸다.
하지만 어디에도 세기말 영웅은 없다. 늘 “아이 앰 어 히어로”를 읊조리는 주인공 히데오(英雄)는 ‘영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기만 한 인물이다. 과거 만화가로서 작품을 연재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고작 반년에 불과했으니. 현재는 에로만화가의 어시스턴트로 연명 중이나, 자기과시욕만큼은 남 못지않은, 환각과 망상에 휩싸여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35세 남자다. 이런 보잘 것 없는 사내가 사람을 습격하는 좀비의 세계에서 답지도 않은 영웅을 꿈꾸는 내내 일본을 무대로 한 지옥도가 여과 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좀비로 변해 자신을 덮치는 애인의 목을 베고도 여전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기분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히데오는 문명세계에서 그랬듯 묵시록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루저일 따름이다. 그는 총도법 위반이 무서워 괴물이 되어버린 이상자에게 총을 겨누지 못하고, 불타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기어이 차비를 지불하고, 감염자들을 피해 도망치는 내내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고생 히로미에게 핀잔만 듣기 일쑤다. 말하자면 히데오는 몸은 자랐지만 정신의 성장판은 닫히지 않은 일본의 젊은이 그 자체다. 무딘 현실감각으로 멸망으로 치달은 세계와 어설프게 맞서는 히데오의 너절함은 그렇게 오늘날 일본사회의 갖가지 치부를 희화화한다. 거침없이 살육이 벌어지고 세계는 복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건만 이를 대하는 히데오는 한없이 너절하기만 해 세기말 지옥도 위에는 공포와 웃음이 교차한다.
<아이 앰 어 히어로>의 특별한 정수는 공포의 세계를 바라보는 이 루저의 시선에 있다. 실제로 작품 초반부는 앞으로 닥칠 좀비세계에 대한 징후만을 조금 내비친 채 마치 전작 <보이즈 온 더 런>에서 보여줬던 루저 극복기의 연장선인양 한심한 팔푼이의 얘기를 오래토록 늘어놓는다. 그러나 시침 뚝 떼던 이야기는 1권 말미에 이르러 실체를 드러내는데, 그저 꿈이 없는 젊은이의 무대인 줄 알았던 현대 일본이 연이은 펼침컷과 함께 순식간에 지옥도로 돌변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비단 사람을 뜯어먹는 잔인한 묘사나 좀비의 기괴한 형상만이 아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눈앞에 펼쳐진 이상 상황은 새로운 룰이 지배하는 신세계를 제시하며 현 사회를 직접 겨냥한다. 아울렛 몰에 모인 사람들은 ‘국가’를 만들어 이전의 세상과 결별한다. 또 집 안에 틀어박혀 있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들은 감염을 피한 신세계의 주역으로서 날뛰는 좀비보다도 잔혹할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국가나 혁명은 그동안 억눌렸던 루저들이 만든 또 하나의 계급사회요 다른 이름의 정글에 불과하다.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들이 엄습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인간들은 또 다시 갈등하고 여전히 욕망한다. 인간의 추악한 면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이 불쾌한 가정은 죽은 감염자나 살아있는 인간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살아있는 시체’임을 명시한다. 좀비의 머리통을 내려찍던 방망이가 이내 살아있는 인간의 머리를 향하는 소름 돋는 순간처럼, 우리의 거울을 자처하는 이 잔혹한 세계에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진짜 모습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실사에 가까운 배경을 구현하는 치밀한 작화와 독자 중심의 1인칭 시점을 자주 사용하는 컷 구성이 말해주듯이 <아이 앰 어 히어로>는 단지 공포의 세계를 형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의 너절함, 그것과의 동일시야말로 작품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를 새삼 바닥부터 긁어 눈앞에 들이미는 불유쾌한 방식은 <아이 앰 어 히어로>를 그 어떤 공포물과도 다른 위치에 놓는다. 이 세계에선 거의 최강의 무기나 다름없는 진짜 총을 들고 있지만,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고 우물쭈물하는 히데오가 영웅으로 거듭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저 우습기만 하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어딘지 모르게 쓴맛이 잔뜩 배어나온다. 부조리한 세계를 대하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비현실적 감각을 이토록 핍진한 서바이벌 세계 위에 펼쳐놓으니, 가장 독특한 좀비물과 가장 특별한 루저물이 따로 없다.
< 출처: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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