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두 아이의 엇갈린 인생, <경성야상곡>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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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들이 웅성대고, 그 하인들의 주인이자 마유미의 아버지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인들의 아가씨이자, 아버지의 딸이 바보가 되어버린 탓이죠. 영어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예절은 물론 바이올린까지 프로 연주자처럼 켜던 마유미는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이후로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어 한 자기억하지 못하더니 길게 길러오던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칼과 포크를 이용해 고기를 잘라 먹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정리하던 아가씨는 온데간데없고 정신없이 고기를 손으로 물어뜯는 바보만이 남았습니다. 대체 마유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마유미와 똑 닮은 이 여자아이는 마유미가 맞지만, 본래는 아니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사실 경성을 중심으로 일본인들과 섞여 사는 남촌에 사는 마유미와 조선인 주거지역인 북촌에 사는 희가 있었습니다. 이 둘은 머리 길이만 조금 달랐지, 똑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죠. 북촌에 살던 희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신여성이 되어 멋진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 때문에 학교는 무슨 저녁밥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였죠. 이랬던 희는 일본인이 많이 사는 번화가로 장사를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졸지에 의원을 하게 된 희는 의원에서 마유미를 만나게 됩니다. 마유미는 자신과 똑 닮은 얼굴을 가진 희를 보고는 둘의 인생을 맞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하죠.
마유미는 왜 가난한 희와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었던 것일까요? 설마 희보다도 마유미가 더 가난했던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마유미의 아버지는 조선총독부에서 일하고 있었죠. 그 덕에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값나가는 양장 복을 가져다주어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맛있는 음식들을 가져다주어도 마유미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가져다 버리고는 점점 메말라갔죠. 모든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이었습니다. 마유미도, 마유미의 아버지도 조선인이었지만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일본인이 되기 위해 애를 쓰고, 같은 조선인을 공격하고 괴롭혔습니다. 마유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 알고 나서는 더는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늘상이러한 운명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찰나에 희를 만나게 되었고, 자신이 되레 희인척 연기를 하여 의원을 빠져나온 것이었습니다. 희의 마을로 온 마유미. 마유미는 자신의 작정이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희의 오랜 벗인 만득이가 희가 아니라는것을 알아차립니다. 마유미는 그에게 희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텐데도 사실을 밝힐 것이냐고 말하고 결국 만득이는 마유미가 희로 살 수 있도록 돕죠.
처음 마유미가 된 희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집인지 궁전인지 구분 가지 않는 모던 아파트와 눈이 휘둥그레지는 액세서리들과 옷들. 무엇보다 시래기 죽조차 겨우 먹던 그동안의 식단과 다르게 두툼한 고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식탁 위로 올라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즐기던 희는 점점 아버지가 그리웠습니다. 좋은 것을 먹고 싶었고,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자고 싶었지만 모두 아버지와 함께할 것으로 생각했었으니까요. 희는 마유미의 집에서 돈을 가지고 아버지한테 찾아갑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희가 된 마유미와 일상을 보내고 있었죠. 희는 아버지가 자신이 아닌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완벽한 마유미가 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마유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랐던 희기에 종종 실수를 하게 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희는 영리하게 일을 해결해나갑니다.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거나, 머리를 다친 바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이용해 역으로 자신이 그들 위에서 내려다보죠. 일본인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 끔찍해 도망치려던 마유미와 다르게 희는 이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루빨리 일본어를 익혀나가죠.
마유미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로 살고 있는 아이가 사실 진짜 딸이 아니라 딸 연기를 하고 있는 희라는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지 오히려 전과 다르게 살갑게 구는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마유미가 되어가고 있던 희 앞에 한사람이 나타나죠. 마유미의 일본인 친구인 히로시입니다. 본래 히로시와 마유미는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였지만 마유미가아닌 희로서는 히로시를 기억해낼 수 없었죠. 하지만 희는 히로시기 마음에 듭니다. 재력을 갖춘 미남. 그것은 희가 북촌에서 꿈꾸던 남편의 모습과 딱 들어맞으니까요.
한편, 희가 되어 가난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마유미. 만득이는 내심 공주님처럼 자란 마유미가 자신이 살던 환경속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지만 오히려 마유미는 달라져 버린 현재에 만족합니다. 물론 배는 고프지만, 마음이편하다고요. 그러면서 남촌과 북촌 사람들은 같은 고민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이 너무나도 다르다고 마음 아파합니다.
역사 속에서는 희생된 사람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그들도 희처럼 학교에 가고, 예쁜 옷을 입고,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과식사를 하고 싶었을 겁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이 있고, 그들도 그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었겠죠. 현재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밤마다 덮고 자는 이불이나, 밥을 올려먹는 식탁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는 않죠.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 어느때에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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