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동경의 공감대 - 미지의 세계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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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만화 속 평범한 고등학생과 더불어 가장 짜증나는 존재를 꼽자면 순정 만화 속 평범한 여주인공을 들 수 있다. 이 친구는 남자 주인공을 한 눈에 반하게 하는 외모와 작품 속 누구에도 빗댈 수 없는 심성을 지녔지만 ‘평범’하다. 독자의 공감대를 위한 수식어지만 평범한 수식어답게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들먹이며 우리에게 이 친구의 평범함을 납득시키려 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건 공감보단 위화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여기 ‘평범’하게 욕구만 높은 찌질한 대학생 미지가 있다. 미지는 과연 우리에게 와 닿는 평범함을 갖추고 있는가?
사실 어떤 인물을 두고 평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단어 사용이다. 이런 말은 으레 ‘평범한 게 뭐냐, 나다운 게 뭐냐.’는 날 세운 질문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치자. “괴상한 사람들이 지천에 깔린 평범하지 않은 상황.” 그럼 이제 이런 반론이 날아온다. “지금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내세우는 건가요?” 날아올지도 모를 질문에 대한 변명이라고 해두자. 내가 이야기 하려는 평범함은 상황의 보편성이다. 보통 대학 생활을 하면서 부자며 정신적으로 심각한 지병이 있고 자신에게 의존하는 지인을 만나는 일은 없다. 양복 입은 악어가 강의실에서 내게 인사하는 것만큼이나 예외적인 상황인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란 말은 이런 뜻이다.
<미지의 세계>는 이런 의미에서 평범하지 않다. 욕구가 넘치고 찌질 하고 무력한 대학생 삶을 그리며 우리에게 공감을 선사하기엔, 미지는 너무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 하루는 클래식 마니아들 틈에서 삶을 보내고 하루는 게이를 비롯한 특이한 사람들과, 하루는 부자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예술가와 삶을 보낸다. 그렇지만 이 특별한 삶 한가운데에 서있는 미지는 더없이 더럽고, 찌질하고 나쁘다. 미남과 사귀면서도, 동성애자에게 고백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동떨어진 채 나는 찌질하다고 외친다.
그래서 미지는 우리에게 평범한 대학생이 가지는 평범한 삶의 공감을 전해주지 못한다. <치즈 인 더 트랩>처럼 조별과제와 과제에 치이는 복잡한 삶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철저히 유리되어 그녀는 밴드와 클래식, 그리고 예술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편엔 현실이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가끔씩 귓속말을 해오는 것이다. 확정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함. 많은 것들이 미지 한 켠에 쌓인 채 자신을 보라고 외치고 있다.
미지는 독백한다. ‘내가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우리 아버지는 공사판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어. 우리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어.’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웹툰을 보는 건, 우리가 게임을 하는 것은 삶이 안정적이고 여유로우며 내일 당장 통장에 수십억의 현금이 들어오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일하는 중에 짬을 내어, 혹은 부모님의 지지 속에서 공부하며, 혹은 놀고먹으며 이런 글을 읽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누군가 말하면 화내는 것이다.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다.”
<미지의 세계>는 우리가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웹툰을 읽는 상황에 뛰어든 격정이다.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누군가 던진 한 마디에 반박할 때 이뤄지는 도피행각에 뒤따르는 공감이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예술가. 약에 취한 채 클래식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들. 프로게이머 급의 게임 실력, 게임 주인공 같은 강력한 힘과 어여쁜 외모, 모든 동경과 소원에 대한 극단적 왜곡이다.
<미지의 세계>가 전하는 공감은 이런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없는 특별함에 대한 동경. 좋아하면서도 쉬 다가서지 못하는 그 동경에 대한 이야기다. 감히 다가설 수도 없고 다가서지 못하는 그 영역을 과도하게 꿈꾸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과격한 표현과 망상으로 덮였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쁘지 않았다. 어조는 조금 나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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