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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어 히어로>
제목을 쓰면서 고민했다. 영화 제목은 <아이 엠 어 히어로>이고, 원작인 만화 제목은 <아이 앰 어 히어로>다. 대체 왜? 검색을 하면 만화가 뜨니까 영화 제목을 바꾼 것일까? 아니면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일본영화 중에 망작이 너무 많아서 회피하려 한 것일까?
(좌)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 포스터 | (우) 만화 아이 앰 어 히어로 표지
만화대국 일본답게 원작을 만화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너무나도 많다. 당연히 걸작, 수작도 나오고 졸작, 망작도 나온다. 원작에 독특한 개성이 담겨 있다면, 그것이 영상화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 쉽지 않다는 것은 정설이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길이 있다. 독창적인 설정과 캐릭터를 잘 가져와 영화와 드라마만의 색깔을 넣는 것이 대체로 정석이다. 아니면 원작의 길을 그대로 따르지만 일단 분량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멜로와 드라마 같은 차분한 장르는 영화로도 잘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액션이나 판타지는 망작이 흔하게 나온다. 최근 <테라포마스>와 <진격의 거인>이 그렇듯이.
하나자와 켄고의 <아이 앰 어 히어로>의 영화화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전작 <보이즈 온 더 런>과 <르상티망>을 거칠게 말하면, 찌질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얼굴도 그저 그렇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 평범한 남자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의 찌질한 행태를 너무나도 리얼하게 때로는 환상적으로 그려낸 필치가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일상과 몽상의 변주를 리얼하게 그려냈던 하나자와 켄고가 난데없이 좀비 만화를 그렸다.
<아이 앰 어 히어로> 1권을 펼쳐보자마자 빠져들었다. 수상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변해간다. 거리에 나가니 좀비들이 떼로 달려든다. 좀비물의 전형적인 시작이다. 그런데도 하나자와 켄고의 주인공은 여전하다. 히데오. 한자로 쓰면 영웅이지만 하는 짓은 지극히 찌질하다. 30대 중반이 넘었지만 정식 연재를 하지 못하고 어시스턴트로 살아가는 만화가 지망생이다. 동거하는 애인도 있고, 직업도 있기는 하지만 히데오는 모든 것에 짓눌려 있다. 해야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남들의 말에 끌려 다니는 반편이다.
히데오의 도피처는 망상과 총이다. 자기 맘대로 상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든다. 현실은 찌질하지만 망상에서만은 영웅이 될 수 있으니까. 총포 허가증을 받아 클레이 사격을 하는 것은 유일한 취미다. 총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히데오는 좀비들의 세계에서 영웅이 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이 갑자기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좀비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도 법은 준수해야 하고, 누가 뭐라 하면 바로 꼬리를 내리기 십상이다. <아이 앰 어 히어로>는 히데오가 어떻게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기보다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아이 앰 어 히어로>를 보면서 압도된 것은 캐릭터보다 그림과 연출이었다. 육교 저편에서 좀비가 다가오는 장면, 바로 눈앞으로 비행기가 돌진해오는 광경 등등. 그야말로 영화적인 연출이었고 생동감을 넘어 그 순간 느꼈을 공포가 전해졌다. 이 장면은 당장 영화로 찍어도 압도적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부산행>과 <서울역>을 만든 연상호 감독도 <아이 앰 어 히어로> 판권을 사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했다.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를 기대한 이유도 그것이다. 만화의 압도적인 사실감을 실사영화로 본다면 어떨까. 하지만 만화 권수가 늘어나면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비가 점점 퍼져나가면서 의식을 가진 존재나 기이한 상황이 생겨나고 점점 세계가 확장된다. 영화로 만든다면 앞부분만을 뚝 떼어내서 만들어야 했다. <간츠>와 <도서관 전쟁>을 연출했던 사토 신스케는 무난한 선택이었다. 한끝이 부족하긴 해도, 둘 다 나름 볼만하게 만들었다. 배우진도 좋았다. 마침 <부산행>의 인기로 국내에도 좀비가 대중화되면서 개봉한 <아이 엠 어 히어로>가 1만 관객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정도면 충분히 성공이다.
<아이 엠 어 히어로>는 무난한 각색이다. 아니 초반은 상당히 좋았다. 만화 작업실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상황이나 좀비들이 거리에 들끓기 시작하는 장면은 볼만하다. 그리고 히데오의 연인이 좀비가 되어 달려드는 장면은 섬뜩하다. 만화에서 느꼈던 서늘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하지만 도망치다 만난 여고생 히로미가 반 좀비로 변한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늘어진다. 히로미가 변하고 나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도 없고, 쇼핑몰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개연성이 부족하다. 일단 무대를 만들어놓고 적당히 노는 분위기다. 클라이막스도 아쉽다. 지하 통로 양쪽에서 좀비들이 몰려든다. <아이 엠 어 히어로>의 좀비는 <워킹 데드>의 좀비와 달리 빨리 움직이는 놈들이 많다. 그런데 한 번 장전해서 두 발을 쏠 수 있는 엽총으로 양쪽에서 몰려드는 좀비떼를 물리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멋진 고어의 풍경이지만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아쉬웠고.
그러니 아직 둘 다 보지 않았다면, <아이 엠 어 히어로>를 먼저 보고 원작 <아이 앰 어 히어로>를 보는 것을 권한다. 더욱 진하게 좀비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이제는 거의 판타지의 경지로 확장되는 좀비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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