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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툰 «굿바이 프로젝트» -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한 철학적 질문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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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86회 작성일 24-05-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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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무엇인가? 대답하기 어렵다면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해보자.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반대로, 인간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이고, ‘비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밤비 작가의 «굿바이 프로젝트»는 인간의 삶과 죽음, 인간성과 존엄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2200년, 우리의 삶은 권태기에 도달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인간이 ‘무병 장수’라는 목적을 달성한 미래 세계를 가정한다. 작품의 시작은 충격적이다. 한 인물이 공원으로 보이는 곳에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주위 누구도, 경찰조차 그를 애써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자살은 보편화되었고 죽음의 의미는 이전처럼 무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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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만족이 사라진 세계에 권태만이 남았다.


    무병장수, 불로장생을 가능하게 한 약의 이름은 ‘해피필즈’다. 외상을 제외한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단기적으로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이 약의 발명으로 인해 인간은 영생으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영생을 얻고난 인간은, 영생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없는 영생은 권태라는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적극적인 죽음의 선취를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자 한다. 이 세계에서 자살은 고통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완성의 획득이며, 죽음은 끔찍한 단절이 아닌 존엄한 마침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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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없는 삶은 완성되지 않는 삶인가?


    그리고 여기 한 인간, 주인공 ‘솜니움’이 있다. 타인을 돕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은 그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구조요원에서 타인의 죽음을 인도하는 요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다소 혼란을 겪던 솜니움도 죽음을 돕는 자신의 행위에 점차 익숙해진다. 통합정부국 (세계 단일 정부가 수립된 유토피아적 세계관으로 추정) 은 자살을 ‘관리 ・ 지원’하기에 이르고,  타인을 돕는다는 사명에 충실한 솜니움은 정부의 ‘굿바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인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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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구하던 솜니움은 이제 죽음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낯선 세계와 설정, 그리고 캐릭터는 수많은 질문을 낳는다. 작품의 세계는 현실과 달리 인간의 ‘불만족’이 제거된 세계이다. 정부는 통합되어 정치적 갈등이 사라졌고, 상대적 빈부차는 있을 지 모르나 물질적 궁핍은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과 죽음까지 극복한 인간은 마치 신이라도 된 듯 어디서도 불만족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모든 불만족을 해소했다고 해서 인간의 유한성이 사라지고 무한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여전히 유한한 존재이다. 순간순간 감정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으며 권태를 피하려 한다. 궁핍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다고 해서, 존재의 염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한한 존재는 바로 그 유한함 때문에 염려하며, 오히려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시간은 그 존재의 염려도 영원히 연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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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생을 얻었다고 해서 인간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영원히 되풀이될 염려 속에 사는 사람에게 죽음은 절망인가, 희망인가? 죽음이 파국이 아닌 완성일 때, 죽음은 피해야 할 대상인가, 취해야 할 대상인가? 영생에 이르는 물질적 만족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톱니바퀴처럼 사는 한 권태로운 인생이, 그 인생의 완성을 위해 죽음을 택하고자 할 때 그것은 금지되어야 하는가, 허락되어야 하는가? 모든 것이 만족된 상태의 인간을 상상해보자. 그 인간에게 남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불만족’이 인간을 추동하는 근원적 힘이라고 할 때, 그 불만족이 사라진 사회와 인간에게 남은 행동과 선택은 무엇이 될까?


    솜니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고 도와주며 확인하는 그의 일은, 비인간적인가, 혹은 가장 인간적인 것인가? 그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을 일인가, 아니면 오직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인가?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솜니움의 모습을 보자. 이 죽음이 죽는 이에게 고통이 아닐 때, 솜니움은 이 죽음에 대해 그래도 무감각해지면 안되는가, 혹은 무감각해져도 되는가?


    지금 현재 인간의 존재가 지금과 같이 이해되는 것은, 그 이해의 조건 하에서만 그러하다. 예컨대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따른 생산력 증대와 물적 풍요, 국가 단위의 정치 체제, 보편교육, 민주주의, 소비문화 따위의 조건에 따라 지금의 인간이 이해된다. 가령 왕정 시대 노비의 존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어느 시점에 지금과는 다른 조건의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의 인간도 전혀 다르게 이해될 것이며, 그 인간의 죽음도 전혀 다르게 이해될 것이다. 마치 노비의 죽음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었음이 분명하듯이.


    이 작품은 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주지 않는다. 도대체 저런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다만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지금 우리의 삶과 죽음은 어떠한가?”라고. 무병장수와 물질적 풍요가 없다한들, 인생의 권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현대인이 처한 상황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대동소이한 삶의 형태는 무의미와 허무, 질투와 자극을 불러온다. 오늘의 나를 다르게 하는 것은 깊이있는 사유도, 통찰력 있는 창조도 아닌 ‘남들과 다른 소비’이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먹고 새로운 물건을 사고서 마치 자신이 조금 새로워진 듯한 기분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한 인생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완성시킬 것인가?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온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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