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지금은 가난중» - 궁핍과 존엄 사이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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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8일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세상을 떠났다. 아사냐,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의한 합병증이냐 그 사인에 대한 논란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최고은씨가 자신의 자존과 존엄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다는 것은 명확하다. 2015년 11월 4일에는 일러스트레이터 난나(본명 장하경)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삽화 작업을 마무리했고, 유서 격으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담당자 연락처를 적었다.
나는 묻는다. 그 죽음은 가난에서 비롯된 것인가? 다시 묻는다. 그 죽음은 궁핍에서 비롯된 것인가? 또 다시 묻는다. 그 죽음은 우리 사회의 궁핍에서 비롯된 것인가?
2017년 현재 ‘가난’은 근본적 조건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감수’의 문제다. 다시 말해, 가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의 선택을 고집할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돈만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돈이 안 벌리는 사회는 아니다. 절대적 부족, 절대적 궁핍의 사회는 아니다. 다만 그렇게 제쳐두는 ‘다른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을 제쳐두는 선택을 할 수 있는지, 해도 되는지, 해도 후회는 없겠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자신이 다른 것을 제쳐두지 않는 선택을 했을 때 확실하게 예측되는 ‘가난’이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했을 때 확실하게 가난하게 된다는 그 예측은, 사람을 궁핍하게 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서글프게 하기는 한다.
여기 한 만화가가 있다. 한 일러스트레이터도 있다. «지금은 가난중»의 주인공 ‘영고’와 ‘사리’, 이 둘의 출발은 가난하다. 이 두 인물이 ‘모든 것을 제쳐두는’ 선택을 한다면, 내일도 가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둘은 묻는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최고은씨와 난나씨에게 물을 것이다. 또 ‘영고’와 ‘사리’에게 물을 것이다. 왜 그런 고집스러운 선택을 했느냐고. 조금이라도 ‘제쳐두는’ 선택을 할 수는 없었냐고. 하지만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아직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한 인간의 실존적 선택을 감당해주지 않는 사회에 머물러 있느냐고. ‘모든 것을 제쳐두는’ 선택은, 자신의 자존심도 제쳐두기를 요구한다. 자신의 존엄도 제쳐두기를 요구한다. 그것은 압도적인 생존의 위협에 맞서, 어떤 어려움도 감당해 내며 악전고투해야 했던 그 시대와 그 사회의 요구였다. 그 요구는 타당했다. 그리고 많은 선배들이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했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나’도 그래야 하는가?
시대와 사회가 변했다면 요구도 변해야 한다. 어쩌면, ‘다른 요구’를 통해 시대와 사회가 변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영고는 자신의 자존과 존엄을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고도 ‘가난’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하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나도 해야해!”라는 영고의 다짐은, 실은 그렇게 하고싶지 않다는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영고의 다짐과 사리의 고민, 그리고 여기에 공감하고 호응하는 독자들의 모습은, 그저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자존과 존엄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발로이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무위도식을 바라지도 않으며 일확천금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저 나에게 중요한 것을 지키더라도 가난하지는 않을 수 있는 것. 자존과 존엄을 지키면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 ‘먹고싶다’인가, ‘먹어야 한다’인가?
이렇게 유쾌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만화를 이렇게밖에 리뷰할 수 없어 오히려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깔끔하고 귀여운 그림체에 범상치 않은 유머, 날카로운 상황 묘사는 이 만화를 웃음 없이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 작품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지 않고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인스턴트한 찰나의 즐거움으로 넘겨버리기엔, 너무나 할 말이 많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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