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우리에겐 왕자가 필요해 - 메종 드 메이드 [스포] 무료웹툰 미리보기
페이지 정보
본문
비단 레진코믹스가 아니더라도 몇몇 작가들이 공유하는 문제점이 하나 있다면, 여성에 대한 존중을 남성 캐릭터의 입을 빌려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남자를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는 남성 혐오에서 입각한 발언이 아니다. 더욱이도, 감히 남성의 입에서 그런 천박한 이야기를 꺼내려 들었다는 꼰대적 발언도 아니다. 매끄럽지 못하게 짜넣은 대사가 이음매에 어색함을 주기에 지적하려 하는 것 뿐이다.
상황은 단순하다. 가공의 상황으로 말도 안될만큼 작위적인 악역을 상상해보자. 이 '남자'는 매우 보수적이고 무례하다. 주인공 여자에게 '여자가 되가지고~' 로 시작하는 진부한 차별 언행을 일삼는 캐릭터다. 이 남자 캐릭터를 화끈하게 제압하는 또다른 잘생기고 친절하한 남자 캐릭터가 등장하고, 사건이 정리되자 이 캐릭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자가 그러는 게 뭐 어때서? 진짜 뒤떨어진 생각 아니야?"
매우 진보적이고 잘생겼으며 주인공이 낯간지러울만큼의 대사를 읊는 이런 캐릭터는, 사실 남성향 하렘물에 등장하는 매일 아침마다 집으로 들어와 잠을 깨우고 도시락을 싸주는 소꿉친구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나는 남성향에 등장하는 이 작위적인 소꿉친구보다 전자의 남성 캐릭터를 더 혐오한다. 다시 말해두지만 이 혐오엔 어떠한 여성 차별적 맥락도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여성의 당당함을 주장하면서 사건의 해결을 남성 캐릭터에게 맡기는 그 방만함을 혐오한다.
[메종 드 메이드]는 여성향 백합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이런 방만함을 곳곳에서 표출한다. 작품의 메인 서사는 메이드 '준'과 '마님'의 사랑 이야기인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 19세기 당시 여성의 한계를 밀쳐내고 당당히 사업가로 성공한 마님 바이올렛에게 쏟아지는 견제와 시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바이올렛의 아버지는 혼인하지 않고 사업에 열중하는 바이올렛을 탐탁치 않아 하고, 바이올렛 역시 이런 분위기를 적응하지 못한다. 여기서 벌어지는 갈등과 기싸움은 이 작품을 한층 재밌게 만들어줬을테지만 이게 웬걸, 아쉽게도 바이올렛은 아버지의 말에 거절하지 못해서 갈등은 일방적일 뿐이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건 사이가 안좋던 바이올렛의 동생이다.
바이올렛이 홍콩이며 인도까지 차 사업을 크게 벌리는 동안 인정해줄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던 아버지는 엔딩서도 바이올렛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아버지에게 다시 일침을 날리는 건 남자인 바이올렛의 동생이다. 이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기존의 기득권층인 남성이 여성인 바이올렛의 주체성을 인정함으로서 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생은 변화한 적 없으며 처음부터 깨어있는 인간이었다. 변화하지 않는 캐릭터가 변혁적인 말을 한다고 해서 시대가 바뀌진 않는다. 그 시대에 앞선 선구자로 캐릭터를 돋보이게 할 뿐이다.
단순한 백합 장르 연애물로도 [메종 드 메이드]는 많은 면이 아쉽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만화적이다. 개그로 넘어가야 할 부분과 서사로 진행해야 할 부분을 구분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과장된 개그씬을 실제 일상에 삽입하면서 준이란 캐릭터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음식을 훔쳐먹고 그릇을 깨먹는 게 일상이지만 이 모든 걸 웃어넘길 수 있는 이유는 마님이 준에게 반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맹목적인 사랑이 기반이된 작품이기에 작품은 연애의 밀고 당기는 맛에도 캐릭터를 보는 맛에도 우리를 담뿍 빠트리지 못했다. 왜냐면 둘은 어찌됐건 이어질게 뻔히 보이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준은 지나치게 민폐를 끼치니까.
왕자님을 찾는 세대는 진작에 지났건만, 아직도 만화 속 여주인공들에겐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줄 왕자님이 필요해보인다. 실제와 완전히 같은 영국도 아니뫼, 여성의 한계를 굳이 내보이고 설정하며 작품 속에 우겨넣어서 작가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마음씨 좋은 마님과 말괄량이 메이드의 이야기론 부족했던걸까? 단순한 연애담으로 이끌지 못할 이야기라면 역사물로 나가는 게 옳지 않았을까?
- 이전글정지화면의 정지화면 # 02 명동에는 ‘왕자가 된 소녀들’이 있었다.『춘앵전』 24.05.27
- 다음글[500자 리뷰] 센티멘털 포르노그래피 2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