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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3회 작성일 24-05-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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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김수박이 스스로의 삶을 기초로 해 구성, 자신의 서울 생활보고서이자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 픽션과 논픽션, 현실과 몽상을 넘나들며 한국 만화의 독창적 영역에 들어간 바로 그 만화, 아날로그 맨.

 

농담이었으면 뉴스에 등장했을 리가 없는 단어, 헬조선 2015. 대학진학률이 아무리 높아도 취업률 앞에 좌절하게 되는 세상이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가끔은 마치 그것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상차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매주 목요일 백화점 오픈 시간마다 줄을 섰다는 친구의 이야기 또한 나와 같은 잉여들에게는 거리가 좀 먼 이야기이다.

 

얼마 전 방영했던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을 보며 서글펐던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서글펐고, 서글펐고, 서글펐다. 부모님 뵐 면목도, 돈도 없어 귀성길에 오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었을 잉여로운 Show가, 그것을 보고 ‘예능이잖아.’라고 쿨하게 넘기지 못하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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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아날로그맨’을 읽으며 퍼뜩 그 쇼가 생각났던 것은, 이것이 꾸며낸 것이 아닌 현실 위에 쌓아올린 이야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간적 배경은 십년도 더 전이지만 그곳에서 펼쳐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지금의 괴로운 청춘들과 그리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 웹툰은 나에게 조촐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헐렝이의 시선은 사실 만화적인 느낌보다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을 준다. 나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두고 아무렇지 않게 “왜?”냐고 묻는 무신경한 주변인들. 왜 사는 게 재미없는지, 왜 결혼은 안하는지, 왜, 왜, 왜. 그럼 너는 왜 그렇게 생각 없이 지껄이느냐고 묻고 싶어지는 장면들이 지나가면 이 웹툰의 여정의 시작되는 친구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오래 전 다툼을 벌인 후 긴 시간 연락이 없었던 친구 칠칠이가 보내 온 손편지였다. 그는 얼마 전 한국 전쟁, 가장 치열했던 전적지 다부동 숲속으로 숨어 자신의 주민권과 사회적 권리를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동시에 그를 초대하며 다부동 숲속으로 가는 길 편이 적혀 있는 인쇄물을 동봉한다. 그리고 삼천 원 중 이천 원으로 계란을 사먹고 천원밖에 남지 않은 헐렝은, 결국 기차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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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김수박은 마치 진중한 영화를 한 편 찍는 듯한 어조로 이야기를 읊조리는데 그때마다 등장하는 한 줄, 한 줄의 말들이 좋은 싯구를 옮겨다 적은 듯 섬세하고 깊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흑백영화처럼 검은 잉크로 그려낸 것 같은 캐릭터와 배경들은 그가 읊조리는 대사들을 받아 적기에 좋은 화선지처럼 보이니 말이다.

알고 보니 김수박 화백은 <또 하나의 약속>의 모티브가 된 작품인 <삼성에 없는 단 한가지>로 프랑스 녹색당이 주는 ‘해바라기 상’을 받은 작가였다. 사회가 답답하니까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접근한다는 그의 젊은 시절이 바로 ‘아날로그맨’에 담겨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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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은 희망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선명한 사실은 각성을 시켜 준다. 그런데 김수박 화백이 각성시켜 주는 이야기에는 어쩐지 희망이 느껴진다. 그 세월을 다 견디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그를 보며 희망을 가져도 되냐고, 조용히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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