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신작소개 - «동쪽으로» 닿지 못할 파라다이스로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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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 분야든 세부적 분화와 다양성은 그 분야의 발전에 필수적 요소입니다. 현대 미술의 수많은 갈래를 비롯해 사진, 음악, 문학, 영화, 연극 등 모든 예술 분야는 그 내부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통해 양적 팽창과 질적 다양화를 만들어냅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 웹툰계는 ‘다양한 시도’라는 측면에서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주제 및 소재 면에서 독특한 모습을 보이는 작품보다는 일상툰, 대학생, 연애물, ‘병맛’ 개그툰 위주의 작품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화풍 역시 이른바 일본식 ‘망가체’에 기반한 작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봉봉 작가의 «동쪽으로»는 한국 웹툰의 다양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작가는 스스로 코믹 저널리즘의 선구자인 조 사코 (Joe Sacco) 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래픽 노블 스타일의 작품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전작인 «회색방, 소녀»에서도 아메리칸 코믹스에 영향을 받은 화풍을 보여준 바 있는데요, 신작 «동쪽으로»를 통해서는 인물, 연출, 구도 뿐 아니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모험 활극이라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본격적으로 차별화된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차별화된 스타일을 보여준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여기에 서사시적 표현을 곁들입니다. 서사시는 자연이나 사물의 창조, 신의 업적, 영웅의 전기 등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 시로서, 여러 인류 문화의 원형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문학의 형태입니다. 작가는 작품 사이사이에 서사시의 문체로 작품의 전반적 방향과 분위기, 세계관을 서술합니다. ‘찬란했던 문명의 빛이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 미래에 네 명의 총잡이가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와 같은 식입니다. 거시서사와 미시서사를 동시에 서술하는 적절한 장치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일컬어 ‘포스트 아포칼립스 액션 판타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대멸망’으로 인해 인류 문명이 멸망한 이후의 시대를 그립니다. ‘빅 보스’가 지배하는 인류 최후의 도시는 세계를 가르는 장벽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동쪽의 세계에는 괴물들만이 사는 폐허의 세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최후의 도시는 절대자 빅 보스가 베풀어주는 ‘통조림’에 의지하여 유지되고 있죠. 그러던 어느날, 폐쇄되어 있던 ‘동쪽으로 가는 문’이 열리고, 사라진 인류의 문명을 간직한 인물 ‘존 도’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의 오해로 존 도는 등장 직후에 죽고 말지만, 그의 등장은 억압되어 있던 서쪽 주민들의 각성을 야기하여 ‘동쪽의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동쪽으로»는 이들이 미지의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는 모험 액션 활극입니다.

▲ 모험의 시작을 알리지만, 적어도 독자에게는 그것이 영원한 꿈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모험 액션 판타지’란 어쩌면 모험도, 액션도, 판타지도 없는 우리를 위한 작은 위로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 우리가 사는 세계도 디스토피아라는 건 같을지도 모르지만요. 주인공 ‘반고’는 빅보스의 통조림같은 삶을 벗어나, 꿈과 희망을 찾아 새로운 세계로 떠납니다. 빅보스의 통조림이란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현대인에 대한 풍자같은 것이겠지요. 중국 신화의 창세신과 같은 이름인 ‘반고’는, 창세신이 그랬듯 자신을 희생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을까요? 작가가 생각하는 ‘파라다이스’가 무엇일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일지, 혹은 또다른 디스토피아에 다름 아닐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들 통해, 적어도 한국 웹툰의 새로운 지평 하나는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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