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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루이>
난조 노리오가 원작을 쓰고 야마구치 타카유키가 그린 <시구루이>는 쇼군 토쿠가와 이에미츠의 친동생 타다나가가 할복을 강요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수만 마리의 원숭이를 학살했다거나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는 등 기괴한 소문이 자자했던 난폭한 영주 토쿠가와 타다나가. 하지만 공식적으로 타다나가의 잔혹함을 알리는 기록은 하나뿐이라고 한다. <스루가 다이나곤비기>에는 칸에이 6년 스루가성의 어전시합 기록이 남아 있다. 22명의 검객이 출전하여 진검을 들고 승부를 겨루어 살아남은 자는 단 6명. 그 중에 2명은 중상이었다. 참혹한 전국시대가 끝나고 공식적인 진검승부가 허용되지 않았던 평화로운 시대에 벌어진 끔찍한 살육이었다. 당시 어전시합을 반대하여 타다나가의 앞에서 할복자살한 신하가 둘이나 되었지만, 타다나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타다나가의 무모한 행사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사의 생명은 무사의 것이 아니라 주군의 것’이며 ‘주군을 위해 죽을 장소를 얻게 되는 것 또한 무사의 명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봉건사회의 완성형은 소수의 새디스트와 다수의 마조히스트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고도 말한다. 봉건시대는 자신의 야망이나 욕망 혹은 단순한 쾌락을 위하여 휘하에 거느린 무사와 백성들을 이용하는 것이 허용되는 기묘한 시대였던 것이다. 전국시대가 끝난 후, 공식적인 평화와 안정이 찾아왔지만 폭력적인 시대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래로 잠복되어 들끓고 있었다. 타다나가의 행동은 그런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 ‘야만’이었다.
<시구루이>의 원작자 난조 노리오는 <고성 이야기> 등의 작품을 통해 ‘잔혹스토리의 붐’을 일으킨 작가로 평가받는다. 난조 노리오는 ‘잔혹’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아무 문제없이 일상생활이 평온하게 영위되고 있을 때, 잔혹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문제가 발생하고, 사회나 세상, 주변의 인간관계가 그 문제를 완화시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 극으로 달렸을 때 드러나는 것이 잔혹이다.’ ‘나는 주로 역사소설을 써 왔지만, 예전의 사회에서는 잔혹이 드러나기 쉽다. 전국시대의 무장들처럼 대립을 완충해주는 조직이 없는 곳에서는 모두가 적대자와 직접 부딪쳐야 한다. 자신이 이기든지 적의 손에 죽든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사람들이 웃어른이나 동료들에게도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기 때문에 일단 그 균형이 깨지면 모든 것이 충돌하게 된다. 여러 감정들이 일시에 분출되고 극단으로 달린다. 잔혹해진다.’ 타다나가는 잔혹한 인물이었다. 그는 균형이나 안정 같은 것을 추구할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주는 정치를 무시하고 진검을 사용하는 어전시합을 벌이는 인간은, 그러나 평화시대에는 필요가 없다. 그래서 타다나가는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잔혹이란 것은 한편으로 아름답기도 하다. ‘문제가 없는 세계, 있어도 그 문제를 받아들이고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 인간들은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없다.....내가 쓰고 싶은 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조용히 억누르려 하지 않고 감정이 폭발해버리는 인간,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내는 인간이다.’ 난조 노리오는 그런 소설을 썼고, 야마구치 타카유키는 주변의 우려를 무시하고 ‘잔혹’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검객들을 압도적인 필력으로 그려낸다. <시구루이>의 주인공은 진검 어전시합에 출전하여 대결을 벌이는 후지키 겐노스케와 이라코 세이겐이다. 어전시합에 나온 두 남자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경악한다. 외팔이 무사인 후지키가 과연 살을 베어내고, 뼈를 자를 수 있을까. 절름발이에 눈이 보이지 않는 이라코의 검이 과연 후지키에게 닿을 수 있을까. 하지만 후지키의 엄청나게 발달한 등근육과 기묘한 자세로 무명역류를 펼치는 이라코의 기세를 보면 누구든지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두 남자는 이미 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온, 잔혹이라는 글자를 온 몸에 새긴 검귀인 것이다.
야마구치 타카유키는 후지키와 이라코의 과거를 보여준다. 어전시합이 열리기 7년 전, 노우비 지역에는 신의 검객이라 칭송받는 이와모토 코간의 도장이 있었다. 이라코는 코간에게 도전하기 위해 도장에 들어가 후지키와 첫 대결을 펼친다. 이라코는 경혈을 눌러 기를 막는 골자술을 써 후지키에게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수제자인 우시마타 곤자에몬에게 패배하자 이라코는 코간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한다. 이라코의 목적은 단지 코간의 제자가 되는 것만이 아니었다. 창녀의 자식이었던 이라코는 엄청난 출세의 야망이 있었고, 입문 2년만에 코간류를 마스터할 재능도 있었다. 이라코는 코간의 데릴사위가 되어 가마를 타고 성에 들어갈 수 있는 무사가 되고 이어서 천하를 제패할 꿈을 꾼다. 교활한 이라코는 코간의 데릴사위가 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코간의 첩 이쿠를 건드린 실수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진다. 눈을 잃고, 한족 다리까지 못 쓰게 된 채 이쿠와 함께 떠나간 이라코. 하지만 몇 년 후 이라코는 돌아와 코간의 제자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후지키와 이라코의 승부는 아직 초반전이었던 것이다.
<시구루이>를 보면 몸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는 내장이나 검을 휘두르는 아찔한 순간의 육체의 아름다움, 즉 미와 추를 박력 있게 그려내는 묘사에 압도된다. 그로테스크한 수준까지 끌어올린 육체의 묘사에 빨려든다. 그리고 ‘무사의 길은 죽음에 미쳐가는 것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면서 모든 것은 시작된다.’ 등의 말이 의미하는 ‘잔혹’ 그 자체를 만나게 된다. 후지키와 이라코는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원했고, 그것이 무너진 순간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잔혹해져야만 한다. 잔혹하지 않다면 그들은 결코 이길 수도, 얻을 수도 없다. <시구루이>가 말하는 것은 아니 보여주는 것은 남자들의 잔혹이다. 그것이 옳고 그른가에 상관없이 그들의 잔혹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보여준다. ‘남자의 감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잔혹해졌을 때다. 남자도 부드러움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딘가 연극적이다. 남자의 경우 잔혹해졌을 때 그 본성이 나온다. 그래서 남자의 세계를 현실로 표현하려면 잔혹은 필수다.’ <시구루이>는 남자들의 잔혹에 관한 지극히 사실적인 풍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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