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서유기의 재해석 - 이말년 서유기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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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사연> 의 작가 랑또는 패러디에 대해 이런 견해를 밝힌 적 있었다. '유행 타는 개그는 밑밥 수준의 개그라 그 한 편에서 한방 날리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시간이 지나면 촌스럽기만 하므로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한때 장미칼이 인터넷 필수요소가 됐을 때 온갖 개그물에서 한 번씩 장미칼 드립이 나왔고, 그 중 대부분이 시간이 지난 지금 보면 유치하단 걸 생각해보면 설득력 있는 발언이다. 패러디에 의존하는 개그는 좋게 말하면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영기간이 지나치게 짧고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영향력을 잃기에 수명이 짧다. 지금 세대에 이르러서 웅이 아버지~나 무를 주세요! 같은 유행어로 개그를 치는 매체가 없는 이유는 그 개그가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유행어의 유행이 지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한세대에서만 흥하는 필수요소에 의존하는 개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는 남의 소재를 빌려 쓰지 않고도 웃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예쁘장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표지에 있건만 매 화마다 나오는 얼굴은 미드 < LOST >의 권진수나 드라마 <야인시대>의 심영 같은 얼굴이라면 그게 진짜 그 캐릭터의 만화라고 할 수 있을까. 캐릭터의 얼굴이 망가지는 상황이 캐릭터성과 개연성 없는 유머 코드의 결과라면 그 캐릭터는 이미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단순히 망가지는 상황이 재밌다면 어떤 캐릭터가 거기 있어도 상관없단 말이 아닌가. 만화는 중심인물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매체이자, 작가의 대화 수단이다. 대화할 때 우리가 눈을 마주하듯, 캐릭터의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면으로 웃기려는 시도가 과할수록 패턴은 고정되기 마련이다. 난 당신이 어젯밤에 봤던 그 드라마에 전혀 관심이 없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이곳에 왔다.
<이말년 서유기>는 이런 입장에서 봤을 때 역시나 조금 과한 패러디로 점철됐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이야 <언더테일>이 꽤 유명하니 '샌즈' 같은 캐릭터로 개그를 해도 어느 정도 통하겠지만 당장 몇 년 만 지나도 샌즈는 “난 아무에게도 말 안했지만 저 별들이 등대라고 생각했어.” 같은 대사처럼, 이게 뭐지? 싶은 작품이 될 거다. 인디 게임을 하지 않는 독자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조금 더 메이저한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를 다시 예시로 들더라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보면 그 게임에서 매우 화가 나는 어떤 상황을 예시로 들며 캐릭터를 화나게 만드는 데, 게임 유저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다. 패러디 개그는 원래 이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 LOL >을 하지 않거나 재미없어서 안했다는 이유로 5컷 분량의 개그를 웃을 수 없다면 그건 조금 억울한 게 아닌지. 구구절절 게임 내용을 읊는 것이 서유기 만화에서 한 에피소드를 견인하는 개그가 된다는 건 소외된 독자에게 묘한 상황이다.
<이말년 서유기>의 개그감각이 빈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패러디와 동시에, 이말년 작가는 캐릭터 개성을 살린 개그를 할 줄 안다. 끊임없이 터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스토리를 일관성 있게 전개할 줄 안다. 감당하기 힘들만큼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들고, 서유기 원작을 특색 있게 해석한 그 노력은 분명 칭찬으로도 모자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패러디 개그를 앞세운 장면들은 특정 독자를 소외한다.
<이말년 서유기>의 개그 감각은 뛰어나다. 원작 캐릭터들을 독특한 방향으로 각색한 그 모습도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개그에 의존하여 전개가 무너지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그럴 때마다 혼세 마왕이 등장하며 "혼란하다 혼란해!"를 외치지만 그 장면들은 계산된 혼란이 아닌 전개의 폭주로 보인다. 감당이 안 될 때까지 개그를 전개시킨 다음, 혼세마왕을 써먹는 것이다. 재해석은 개그와 전개가 어느 정도 일치를 이룰 때 의미가 있다. 혼세마왕의 난입은 단역에게 확실한 캐릭터성을 부여했지만 작품 전개에 좋은 영향을 미쳤느냐를 따진다면, 지나치게 편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손오공을 메인으로 삼은 작품은 많지만, <서유기> 원전을 건드린 작품은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캐릭터와 전개의 참신한 재해석과 특유의 개그센스를 이용한 전개는 좋았지만 캐릭터에 휩쓸린 게 아닐까 싶은 후반 전개와 패러디 개그는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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