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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마 1/2>
최고의 엉망진창 코미디만화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란마 1/2>을 1순위에 올린다. 왜 <이나중 탁구부>가 아니냐고? 그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웃기려고 작정한 냄새가 풍기고, 소수 취향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비슷한 패턴의 개그가 반복되면서 10여권을 넘어가면 좀 지루해지기도 한다. 물론 <이나중 탁구부>가 소수의 취향을 주류로 끌어올린 중요한 작품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나중 탁구부> 류의 <초학교법인 스타학원>이나 <괴짜 가족> 등을 누군가에게 권하려면 어쩐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분명히 이 만화들은 소수 취향이다.
하지만 <란마1/2>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가 언제 보아도 즐겁다. 일본에서 <란마 1/2>의 작가 다카하시 루미코는 국민작가로 평가받는다. 데츠카 오사무, 요코야마 미츠테루 등의 거장들 못지 않게 일본 만화를 대중화시킨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 것이다. 다카하시 루미코는 로맨틱 코미디인 <메종일각>, 코믹 판타지 <우루세이 야츠라>, 공포물 <인어의 숲>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걸작을 양산했다. <우루세이 야츠라>는 호랑이 가죽옷을 입고 외계에서 온 럼이라는 소녀가 한 소년을 사랑하면서 엉망진창의 소동이 벌어지는 코미디다. <공각 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다. <메종 일각>은 한 하숙집을 배경으로 차분하게 엮어나가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곳곳에서 번득이는 개그적 감성이 탁월하게 드러난다. 다카하시 루미코는 일상의 웃음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를 잘 알고 있는 만화가다. 그리고 <란마 1/2>은 그 웃음을 만화적으로, 가장 요란하게 그려놓은 작품이다.
한국 시트콤의 걸작인 <순풍 산부인과>처럼 <란마 1/2>은 캐릭터에 크게 의존한다. 나는 <이나중 탁구부>의 캐릭터에게 애정을 갖기가 도저히 힘들었다. 웃기는 놈이군, 정도는 생각했지만 아무리 마음을 넓게 가져도 그들에게 ‘애정’은 어려웠다. 하지만 <란마 1/2>은 다르다. 남자로, 여자로 정신없이 변하는 주인공 란마가 귀엽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뿐이라면 큰 칭찬거리가 되지 못한다. <순풍산부인과>를 봐도 오지명보다 박영규나 오중이 같은 조역들이 훨씬 재미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란마 1/2>도 팬더로 변하는 란마의 아버지, 여자 탈의실에 숨어들어가는 게 취미인 아버지의 스승, 돼지나 오리 등으로 변하는 란마의 친구 혹은 라이벌들이 란마보다 훨씬 재미있는 캐릭터다.
<란마 1/2>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란마는 아버지와 함께 무술 연습을 위해 중국으로 간다. 산골에 자리잡은 연못 주변에서 싸우던 란마와 아버지는 연못에 빠진다. 그런데 란마가 빠진 연못은 여자로 변하는 곳이고, 아버지가 빠진 연못은 팬더로 변하는 곳이다. 찬물을 덮어쓰면 여자로 변하고, 더운물을 덮어쓰면 다시 남자가 된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이 장소에 란마의 라이벌 료가가 대결하러 왔다가 꼬마돼지가 된다. 란마와 아버지는 일본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는 도장을 찾아간다. 그들은 과거에 자신의 아들딸을 결혼시키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아카네와 란마는 한 집에 살게 되는데, 여기에 란마의 라이벌과 친구들이 꼬여들면서 온갖 사건들이 벌어진다. 주된 이야기는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즉 ‘로맨틱 코미디’의 일상적인 사건들이 <란마 1/2>에서, ‘판타지’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란마 1/2>은 사건 자체보다 황당한 개그가 주를 이룬다. 란마 아버지의 스승이 어떻게 한 집에 살게 되었을까. 그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훈련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굴 안에 스승을 가두고 도망쳤던 어두운 기억이 있다. 그 훈련이란 스승이 한 온갖 잡스러운 일(여성의 속옷을 훔쳐 달아나면 대신 맞아주는 등의)의 뒤처리였다. 그런데 스승이 살아나 란마 부자가 살고 있는 도장에 찾아오자, 란마의 아버지는 팬더로 변해 시치미 뚝 떼고 모르는 척 한다. 뻔한 상황인데도 딴청 피는 팬더의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숨이 찰 지경이다. 란마의 아버지는 곤란한 상황이 되면 팬더로 변해(팬더는 말을 못하니까) 어물쩡 넘기려 든다. <란마 1/2>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상황을 태연하게 개그로 엮어나간다. <란마 1/2>의 개그는 결코 낯간지러운 술책이 아니다. <란마 1/2>의 개그에는 서민적인 웃음이 배어있다. 타인을 괴롭히거나, 낮추어보는 비열함 같은 것이 없다. 다카하시 루미코가 일본 만화계의 거장이 된 이유는, 바로 그 ‘서민적’이란 장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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