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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조>
‘국민학교’ 시절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아니 무단 복제한 만화를 먼저 봤던가? 하여튼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만화의 원제가 <내일의 조>였음을 안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대학 시절에 가장 재미있게 봤던 책 하나를 꼽자면, 첫 머리에 <전공투>가 떠오른다. ‘전공투’는 전국공동투쟁위원회, 어쩌구 하는 조직의 약자다. 퍼스널 컴퓨터를 퍼스컴이라 부르고, 텔레비전을 테레비라고 줄이는 등 약자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인지라, 긴 조직의 이름보다도 약자가 더욱 유명하다. 60년대 전세계를 휩쓸었던 학생운동은 일본에서도 위세를 떨쳤고, 그 절정에 ‘전공투’라는 조직이 있었다. <전공투>는 전공투라는 조직이 결성되기까지의 역사와 전공투를 둘러싼 사건들, 조직 체계과 이데올로기까지 잡다하게 서술해놓은 책이다. 흥미로운 건 책의 절반 정도가 만화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안전모와 기다란 깃발로 무장한 시위대와 날로 발전하는 경찰의 복장과 무기를 일일이 설명을 붙여 그려놓은 것은 물론이고, 시위가 벌어진 곳의 구체적인 상황까지 세세하게 그림으로 옮겨놓았다. 그림만 봐도 아주 재미있다. 경찰들이 방패로 발등을 내려찍기 때문에 시위대들은 앞머리가 딱딱한 구두를 신고 다녔다든가, 전공투에 참가한 수많은 조직들이 자신의 조직을 선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유머러스하게 서술했는지 무협지를 읽는 기분으로 순식간에 읽었다.
전공투 투쟁의 고비였던 도쿄대 야스다강당 사건의 묘사는 특히 재미있다. 야스다강당을 점거한 학생들이 농성을 벌이고, 포위한 경찰들과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림을 곁들여 보여진다. 결국 야스다 강당은 폐허가 되고 학생들은 모두 끌려나오며, 60년대 일본학생운동은 막을 내린다. 학생들이 기거하던 야스다 강당의 벽에는 그들의 신념과 이상을 적어 넣은 글들이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내일의 조다’라는 구절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건 당시 최고 인기 만화의 하나였던 치바 데쓰야의 <내일의 조>를 자신들에게 빗댄 말이다. 맞아도, 맞아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달겨드는 조를, 정부에 항거하는 자신들의 불굴의 의지와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일의 조>는 고아원 출신의 조가 권투로 성공하는 이야기다. 조는 팔을 내리고 무저항으로 맞다가, 한 방의 주먹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독특한 방식으로 인기를 얻는다. 상대방을 조롱하듯이, 상대의 모진 주먹과 욕설을 받아들이고 마침내는 승리하는 것이다. 조를 응원하는 사람, 조의 주변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의리 있는 하층민들이다. 치바 데쓰야는 하층민들의 캐릭터를 아주 매력적으로 그려놓았다. 조역이나 조의 적인 상대 선수까지도 매력이 흘러넘친다. 조와 대결을 벌이는 챔피언 리키이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한다. 만화에서 리키이시가 죽자, <내일의 조>의 팬들은 리키이시 추모집회를 열었다. <거인의 별>의 스토리를 썼던 작가 다카모리 아사오와 치바 데스야의 합작인 <내일의 조>는 인물 하나 하나에까지,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내일의 조>가 전공투 학생들을 사로잡은 것은, 민중적인 내용과 함께 불꽃처럼 타오른 당대의 ‘싸우는’ 인간형을 예리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정부에 맞서 싸우는 스스로를 싸움꾼 조에 비유할만큼 일상적인 화두가 되었던 <내일의 조>의 등장은, 일본에서 만화가 대중의 가장 중요한 오락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만화가 아이들이나 소수의 오락이 아니라, 보편적인 오락인 동시에 예술임을 과시한 것은 <내일의 조> 이후에 가능했던 것이다. <내일의 조>의 승리는 단지 라이벌인 리키이시를 링에 눕힌 것만이 아니었다. <내일의 조>는 만화를 업신여기는 기성세대의 고루한 고정관념과 맞서서도, 쉴 새 없이 두들겨 맞으면서도 끝내 승리를 쟁취했다. 지금도 <내일의 조>가 흥미로운 것은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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