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내맘대로 특집 - 고아라 작가 편 : 7. «작품 세계 탐구»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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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아라 작가의 작품 전체를 다뤄보고자 마음먹었던 때는 «럭키미»와 «파도를 걷는 소녀»의 이질감을 느꼈을 때였다. «어서와» 리뷰에서 나는 고아라 작가를 통해 인디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했지만, 그것을 처음 목격한 것은 사실 «럭키미»에서였다. 여타 작가와는 전혀 다른 표현과 감수성은 그것이 대중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고수하려는 작가의 의지에 의해 끝내 일정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작가는 «파도를 걷는 소녀»에서 그간의 작업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작업을 선보였다. 그것이 작가의 방향 전환이었다면 그것대로 좋았겠으나, 시즌 1 21화를 끝으로 작가는 작품에서 하차하였고 그 이유로 ‘기질 차이의 극복 불가능’을 들었다. 나는 여기에서 작가가 하나의 ‘타협 불가능한’ 지점을 드러내었다고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작가의 작품 전체를 리뷰하고 작품 세계 전체를 개괄하고자 하였다.
1. 작화
만화는 기본적으로 시각 예술의 일종이며 그림을 통해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사가 없는 만화는 있을 수 있지만, 그림이 없는 만화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만화는 줄거리나 소재, 주제 못지 않게 그림 그 자체로도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줄거리를 통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전달한다면, 그림을 통해서는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정서 혹은 감수성을 전달하게 된다.
고아라 작가를 대표하는 첫 번째 특징이 바로 이러한 그림 스타일이다. 아날로그 수채화 그림은 고아라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차이점으로,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서 혹은 감수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수채화는 잘못 그렸을 때 수정할 수 없다는 특징 때문에, 순간적이고 직감적으로 그릴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유화에 비하여 표현이 경쾌하고 선명, 또한 표현의 가능성이 보다 넓다. 따라서 작가의 심상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게 할 수 있다. 나아가 수작업이라는 특성에서 CG와는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고아라 작가의 그림은 작가 자신의 내면을 생생히 드러나는 유용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은 ‘사진 찍기’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작가가 포착한 그 무엇을 전달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그림을 통해 작가가 자신이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아라 작가의 그림은 크게 세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작품활동을 시작했던 «어서와»와 그 뒷이야기를 그린 «럭키미»가 하나, «사랑하는 나날»부터 «청소년 영화»에 이르는 시기가 하나, 최근 연재작인 «파도를 걷는 소녀»가 하나이다. 물론 «럭키미»의 연재 시기가 «사랑하는 나날»보다 다소 늦기는 하나, 두 작품이 동시에 진행된데다 «럭키미»가 «어서와»의 뒷이야기로서 그 표현 방식에 있어 연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두 작품을 한 시기로 간주하였다.
«어서와»와 «럭키미»에서는 작가의 초기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에서 작가는 매 컷마다 완성도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디테일을 생략하고 단순한 스케치와 채색을 통해 매우 평면적인 작화를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인물과 장면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지만 그것을 치밀하게 그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특징은 «럭키미»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디테일 묘사가 늘어나고 작화 자체가 더 섬세해지는 등 보다 발전된 작화를 보여준다. 아무래도 도전만화 코너에 연재한 작품과 정식 계약 후 연재한 작품의 절대적 퀄리티 차이는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어서와» 에서는 아마추어 시절의 첫 작품이었음에도 작가 고유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 «럭키미» 는 «어서와»의 표현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디테일 면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다.
«사랑하는 나날»에서 «청소년 영화»에 이르는 시기에 작가는 자신의 표현 방식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이르러 작가는 자신이 표현하려고 하는 내용과 정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러 아이디어들을 극 전개 과정에 삽입하기도 하며, 자신이 포착한 내용을 작품에 녹여내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따라 «사랑하는 나날»과 «어떤 교집합»의 작화 상 차이는 크지 않다. 반면, 리뷰에서는 다루지 않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산책»을 포함해, «청소년 영화»에 이르는 미스터리 드라마 시기에서는 보다 ‘정통 만화’적인 화면 연출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시기의 작가는 ‘극劇의 진행’ 그 자체에 집중하는 듯 하며, 작품의 형식적인 측면인 컷 연출, 플롯 구성, 작화 상의 세부 묘사 등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따라서 하나하나의 컷을 통해 정서를 전달했던 기존의 특징은 작품의 일부분에서만 발견된다.

▲ 주관적 시선에 따라 고유하게 포착된 인물을 묘사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사랑하는 나날»에서.
▲ 인물의 감정 상태를 재치 있게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교집합»에서.

▲ 전통적인 만화의 작법을 따라 연출한 작품도 있다. «청소년 영화».
최근작 «파도를 걷는 소녀»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작화 상의 세부 묘사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을 확인할 수 있고, 보다 세련된 연출 방식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색 사용에도 변화를 주어 채도를 낮추고 명도를 올림으로써 보다 보기 편안한 그림으로 전환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영화»까지만 해도 작가는 평면적 연출과 전통적 연출을 함께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파도를 걷는 소녀»에 와서는 그러한 평면적 연출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스토리작가와의 협업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 고아라 작가의 작품에서는 처음 시도된 연출이다. «파도를 걷는 소녀»에서.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비추어 봤을 때, 작가는 작화에 있어 형식적 측면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가진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형식 역시 발전을 거듭해야 하는데, 작화 형식의 지속적 변화는 그러한 고민의 반영이라고 생각된다.
2. 플롯
고아라 작가의 플롯 구조는, 스토리 작가와의 협업을 시도한 «파도를 걷는 소녀»를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선형적 스토리 전개는 찾아볼 수 없으며, 각 인물들의 행위와 감정이 다른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바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플롯이 짜여진다. (혹자는 그것을 퍼즐형 전개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극劇에 긴장감을 살려줄 뿐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각 등장 인물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인물의 행위와 감정을 유발하는 계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유리한 방법이며, «어떤 교집합»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현재와 과거, 인물과 인물을 교차편집하는 이러한 방식은 사실 우리가 현실에서 사태를 파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떠한 사태를 시간에 따라 선형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어떠한 한 시점에서 그 사태를 기점으로 과거를 파악하고 재구성한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 그 자체로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며, 현재의 사태와 관련하여 그 때마다 새롭게 해석된다. 고아라 작가가 플롯을 만드는 방식은 이처럼 ‘현재의 시점에서 해석되는 각자의 경험’을 드러내기에 적합하고, 그로부터 유발된 현재 시점의 감정을 묘사하기에도 적절하다.

▲ 과거의 일은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되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는다. «어떤 교집합»에서.
또한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공통된 감정으로 연결시켜 묘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나날»에서 지선이 김준에 대한 감정을 묘사하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승현이 김미에 대한 감정을 묘사하는 부분으로 이어진다. 두 인물의 이야기를 병렬 배치하는 매개로 공통된 감정을 선택한 것이다.



▲ 두 이야기의 매개체로 공통된 감정을 선택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인다.
한편 미스터리 드라마를 시도한 «청소년 영화»는 기존에 선보였던 플롯에 더하여 영화적 구성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교집합»까지의 작품에서, 서사 구조 자체는 평이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다룬 소재와 주제의 영향이며, ‘일상적 정서’를 다루는 작품에서 ‘극적 상황’을 다룰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청소년 영화»에서 작가는 소재 자체를 바꾸었고, 이에 따라 전통적이며 영화적인 플롯 구조인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의 순서대로 주인공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원의 죽음과 본인의 자전거 사고(발단) - 기억을 잃었음을 자각하고 기억을 찾으려 애씀(전개) -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반발에 부딪힘(위기) - 사건의 진실을 깨닫고 모든 기억을 되찾음(절정) -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 후회함(결말) 이라는 플롯이 되는데, 이러한 명확한 플롯 전개는 이전의 작품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유형이다. 이러한 플롯 구조 전환으로 짐작해 보건대, 고아라 작가는 작화 뿐 아니라 작품 전반에 걸쳐 완성도를 높이려는 고민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 1화에서 주원의 죽음과 영화 및 연성의 사고가 모두 보여지는데, 이전 작품과는 크게 다른 첫 화이다.
3. 주제 및 소재
고아라 작가가 즐겨 다루었던 주제는 ‘일상적 정서’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버릇과 기호를 관찰하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일상적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의 일상적 행위를 포착하고 소재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 생활은 어떤 치밀한 인과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우리의 감정도 인과관계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행위든 감정이든 그저 자연스럽게, 사소한 계기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인생에서 재미없는 것을 잘라내고 남은 것이 드라마다”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고아라 작가는 그 ‘재미없는 것’도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작가가 사랑을 다루는 방식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작가는 절절한 사랑을 다루지 않는다. 세기의 사랑도, 운명적 사랑도 다루지 않는다. 내가 저 사람에게 반하는 계기는 고작 음료수 한 캔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사랑은 ‘재미없는 것’을 드라마로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그 드라마는 유치할 수도, 사소할 수도, 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극劇으로 만들어 보여주었을 때 각자의 이야기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고아라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관찰하는 일상적 행위 모든 것이 소재가 되고, 느끼는 모든 감정은 주제가 된다. «어서와»에서 «어떤 교집합»에 이르는 시기에 이것이 집중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일상적 행위에는 일상적 정서가 스며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상을 포착하고 정서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매번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작가 스스로도 다른 이야기를 하고싶은 때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청소년 영화»에서 ‘자기 발견’이라는 주제를 말하기 위해 ‘기억 상실’이라는 소재를 가져온다. 이러한 ‘자기 발견’이라는 주제는 «어떤 교집합»에서도 잠시 엿보인 바 있다. 기존의 자신을 극복하고 한 단계 성장하는 인물형은 «어떤 교집합»의 윤송과 수정에게서 먼저 보인 바 있다. 다만 «어떤 교집합»은 등장인물의 자기극복 서사가 주요 주제는 아니었고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한 바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극복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작품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반면 «청소년 영화»에서 주인공 영화의 자기 발견은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제이다. 표면적으로 영화의 이야기는 주원이 자살하게 된 원인을 찾는 과정이지만, 그것이 실은 스스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는 것 때문에, 실제적으로 이 작품은 영화가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된다. 특히 결말에서 영화가 잊었던 ‘사실’을 기억해내는 것을 넘어서서 잊고자 했던 자신의 ‘마음’까지 마주치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 망각하려고 했던 자신의 마음을 뒤늦게 깨닫는 이 장면이 작품의 핵심이다. «청소년 영화»에서.
이러한 주제 및 소재의 전회가 «파도를 걷는 소녀»에 와서 잠시 중단된 점은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 «파도를 걷는 소녀»에서 작가의 작화 범위가 한 단계 넓어진 것은 분명해 보이나, 그 대신 주제와 소재, 이야기 전체를 스토리 작가에게 넘겨주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그러한 협업을 통해 작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주제 및 소재의 범위가 넓어졌을 수는 있다. 그것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 변화
지금까지 확인한 바에 따라 작가의 작품 세계의 전환점을 크게 대별해 보면, 1) «어서와»의 자기 방식 정립, 2) «사랑하는 나날», «럭키미», «어떤 교집합»의 일상적 정서 및 사랑의 표현, 3)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산책»과 «청소년 영화»의 정통 만화적 접근, 4) «파도를 걷는 소녀»의 자기 확장 시도 라는 네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1) «어서와»의 자기 방식 정립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게다가 정식 연재도 아닌 도전만화 연재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서와» 는 작가가 자신만의 표현 주제 및 소재, 방식까지 정립한 작품이다. 디테일을 생략하고 인물 및 부각시키고자 한 대상에 집중한 평면적 표현은 «청소년 영화»에 이르기까지 유지된 방식이다. 사람들의 일상적 행위라는 소재와, 그로부터 유래하는 일상적 정서라는 주제 역시 «어서와»에서 제시된 것이다. 앞서 리뷰에서 ‘인디’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이유가 여기 있는데, 그 형식과 표현의 완성도를 떠나 자신의 주제와 소재 ・ 표현 방식을 정립하고 그것을 유지 ・ 발전시켰다는 것이 그것이다.
2) «사랑하는 나날», «럭키미», «어떤 교집합»의 일상적 정서 및 사랑의 표현
이처럼 뚜렷한 작가 자신의 작품 세계는 이후 세 작품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구체화된다. 작가는 일상적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매개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사랑 그 자체를 다루기보다 사랑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일상적 행위를 그려낸다. 등장인물이 사랑이라는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일상적 정서를 그렸다고 할 수 있다.
3)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산책»과 «청소년 영화»의 정통 만화적 접근
그러나 같은 주제와 소재를 네 작품에 걸쳐 다루었다면 작가로서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자기 복제의 위험도 있다. 작가는 이에 정통 만화적 접근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산책» (현재 서비스 중단) 과 «청소년 영화»를 통해 작가는 ‘극劇의 플롯’을 ‘정통 만화적 표현’으로 만들어내고자 한다.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로 이어지는 완결된 이야기를 짜여진 틀에 맞춰 정제해 그려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4) «파도를 걷는 소녀»의 자기 확장 시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근작 «파도를 걷는 소녀»에서 작가는 자기 확장을 위한 협업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평이한 플롯과 흥미로우면서도 대중적인 소재, 정석적인 작화를 선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 작품의 이야기가 고아라 작가의 기존 시도와는 크게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어, 작화를 제외하고는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작화에 있어서는 작가의 표현 범위가 넓어진다는 데 그 의의를 둘 수 있겠으나, 그 외 측면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파도를 걷는 소녀»를 2. 플롯과 3. 주제 및 소재 부분에서 다루지 않은 이유도 그것인데, 여기에 고아라 작가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5. 결론
앞선 여섯 개의 개별 작품 리뷰를 포함한 작품 세계 탐구를 통해, 나는 ‘작가주의 인디 만화가의 자기 발전 과정’이라는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1) 작가주의
‘작가주의’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상이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다만 만화 창작에 있어서 작가주의는 ‘장르의 문법에 따르지 않고 작가의 주제 ・ 소재 ・ 표현 등을 고유한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 정도로 개념화할 수 있다. 작가주의 만화가들이 겪는 가장 큰 장애물은 결국 자신의 만화가 대중적으로 소개될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판 만화 위주의 만화 시장이 웹툰 위주의 시장으로 변화하고 작업 도구 또한 디지털 작업 위주로 변화하면서, 작가주의 만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 자체는 많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고아라 작가 역시 이러한 웹툰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어서와»라는 작품의 정제되지 않은 그림과 명확하지 않은 스토리 라인은 출판 만화 시장에 수용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웹툰이라는 매체가 있었기에, 작가 고유의 주제 ・ 소재 ・ 감수성이 그것만으로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어서와»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이 작품은 그 완성도에 있어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확인된 작가의 작품세계가 이후의 작품들에서 확장 ・ 전개 ・ 표현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며, 이러한 점에서 고아라 작가를 작가주의로 설명한 것이다.
2) 인디
이러한 작가주의는 ‘인디’의 방법론을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 인디를 ‘거대 상업 자본 및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고, 지원 및 투자 없이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인디라는 방법은 작가주의적 성향을 실현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주의 창작은 ‘타협 불가능함’을 내재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더 잘’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있을지언정, ‘상업성’ 혹은 ‘대중성’과 타협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표현하지 않는 선택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더 세련된’ 작품을 만들 수는 있을 지 몰라도 말이다.
3) 자기 발전
따라서 «청소년 영화»까지의 작품 흐름은 작가 자신의 자기 발전 과정으로 이해함이 옳다. 즉 작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더 잘 표현하고자 하는 지속적 시도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모든 요소에서 직전작에 비해 다음 작품이 낫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관성적인 작품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서와»에서 «사랑하는 나날»과 «럭키미»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사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일상적 정서를 표현한다는 구조를 구체화했고, «어떤 교집합»에서는 자기극복하는 인물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산책»과 «청소년 영화»를 통해 정통 만화적 접근과 주제의 다양화를 시도하였고, «파도를 걷는 소녀»를 통해 협업과 작품세계 확장을 시도하였다.
4) «파도를 걷는 소녀»에 대한 판단
그러한 점에서 «파도를 걷는 소녀»는 작가의 작품 흐름 상 자연스러운 동시에 이질적인 것이라 하겠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일종의 ‘타협’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대중적인 작화와 스토리는 이전 작품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작가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타인과의 협업을 통해 해결해보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부족한 대중성을 보충하고자 자신의 작가주의적 경향을 일정 부분 포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작가 스스로에게 납득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작품 리뷰에서도 밝혔듯 이 작품은 지나치게 통속적이며 스토리와 연출 역시 안이한 부분이 많다. 작가 개인에게 이것이 일종의 퇴보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타협 불가능한 지점’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점에서 그 선택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6. 나가는 말
여기까지 고아라 작가의 작품 전반에 대한 리뷰를 시도해 보았다. 시간과 제반 여건의 제한, 그리고 리뷰어의 부족함으로 인해 심도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쉽다. 특히 «곰곰묘묘 이야기»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산책»을 개별 리뷰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고아라 작가의 차기작이 상당히 기대된다. 그 수작 혹은 명작 여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작가가 쌓아온 작품 세계와 그에 따른 작가 본인의 질문을, 작가가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답을 찾아 차기작을 준비할 것인지 그것이 몹시 기대된다. 고아라 작가의 차기작에서 그 답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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