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결제해도 괜찮아] #04 먹는 존재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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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존재
들개이빨 지음 | 레진코믹스 | 총 42화(연재중) | 회차당 2코인
사회생활을 하면 점심시간만큼 애매한 게 없다. 선호하는 음식이 제각각 이어도, 뭘 먹어도 상관없다는 분위기도 모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허기만 채우면 된다는 무임승차자에겐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겠지만. 하지만 백수가 되면 사정이 다르다. 처음이야 라면이나 국민찌개로 몇 주 버티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한 끼 한 끼가 전쟁터의 병사처럼 그렇게 처절할 수가 없다. 제대로 살아가는 건, 자신이 먹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만화 『먹는 존재』는 결코 회사라는 단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없는 여주인공 ‘유양’이 결혼이란 탈출구에 기대지 않고 맨몸으로 삶을 뚫어가는 맛깔스런 이야기다. 스타일 상, 때로는 일말의 허세로 부서의 집단주의를 조롱하듯 혼자만의 점심시간을 갖는 그녀는 어느 날 더는 피할 수 없는 회식자리에서 부장의 면상에 침을 내갈긴다. 사표가 아닌 회사의 해고통보와 함께 시작된 그녀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어느덧 41화까지 이어지고 있고, 술자리에서는 이미 수십 번도 더 사표를 내던졌을 30대 초중반의 여성 독자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냉소적이고 시니컬하면서도 조미료 따위 아끼지 않는 거침없는 블랙 코미디 『먹는 존재』는 회색조의 풍경을 취한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다고 말하는 듯이. 총천연색으로 존재를 뽐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음식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음식이 색깔을 얻는 건 아니다. 오직 유양과 등장인물에게 어떤 삶의 맥락을 제공해주는 음식들에 한해서만 색이 허용된다. 그리고 이따금 단단한 일상의 벽에 균열을 만들어 내는 대사나 등장요소에도 예외적으로 색이 묻어난다.
하지만 단 한 명, 색깔을 입은 예외적인 존재가 있다. 존재 자체로 유양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 바로 유양의 남자친구 ‘박병’이다. 박병은 눈, 코, 입을 제외하고는 신기하리만치 디테일한 형체가 없다. 심지어 옷이랄 것도 분간이 안돼서 유양의 가족들이 옷을 벗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런 그에게 허용된 색깔은 유양이 밤새 마실 수 있다는 레몬 소주의 색, 바로 ‘노랑색’이다. 회색의 세계에 오직 맛있는 음식에게만 허용되는 색이 채색된 ‘박봉’. 그의 순수하면서도 결단력 넘치는 활약은 유양과 다른 맛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먹는 존재』는 음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난 그저 고립을 원한다” 소리 쳤던 유양이지만 막상 혼자 먹는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홀로 먹는 음식이래 봐야 삼각김밥, 떡볶이, 죽, 국수, 양념통닭 따위다. 길에서 먹거나, 배달시켜 먹거나, 아니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친근하지만 그저 허기와 고단한 일상을 다독일 정도의 식단들. 단독 식사에서 최고의 사치가 마의 1만5천원 벽을 넘어설지를 두고 긴장감을 최고조로 몰아갔던 회전초밥 정도였다.
『먹는 존재』가 먹는 존재다워지는 지점은 오히려 함께 먹는 순간들이다. 함께 먹는 두 명의 존재 때문에 유양은 삶을 전진시켜 나가고 그 때 음식들은 삶의 은유로서 기능한다. 그 중 한 명은 유양의 친구 ‘조예리’. 네일 아트에 똥머리 스타일,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싫은 것도 참아내는 전직장 동료인 그녀는 유양이 유일하게 훠궈를 함께 먹는 친구다. 매운 맛과 담백한 맛을 함께 담은 훠궈 만큼이나 둘은 전혀 다르지만 묘한 지점에서 통한다. 상대의 강점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듯 그렇게 적당히 간격을 유지한 채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마치 철길처럼 나란히 함께 뻗어가며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한다. 41화 ‘집에서 훠궈를’ 편은 둘만의 음식이 어떻게 아픔을 위로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 명의 식사 파트너는 유양의 남자친구인 ‘박병’. 둘이 함께 먹는 음식들은 둘 사이의 관계발전을 상징하는 동시에 새로운 단계로의 출발을 은유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박병과의 첫 만남의 음식이 떡이었던 것은 여러가지로 재미난 설정이다. 클럽에서 천연덕스레 떡을 먹고 있는 박병과 원나잇을 한다는 것은 언어의 유희 측면에서도 무척이나 기발한 음식 선정이라 생각한다. 프로포즈를 할 때의 오징어도 그렇고, 재회할 때 1년 살이 새우도 그렇다. 이 둘 사이에서 음식은 서로의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전진시키는 요소로 기능한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회식자리에서 만취한 부장 면상에 굴을 집어 던진 역사적인 첫 해고 이후 어렵게 들어간 두 번째 직장에서도 아니나다를까 회식 다음 날 해고 통보를 받는다. 해방감만큼이나 절박한 진로 고민 사이에서 기이한 인연으로 남자친구를 만나고, 그를 통해 창작의 길을 걷는다는 각오를 다진다. 하지만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발전하고 친구의 결혼 발표로 유양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져만 간다.
사실 <테이스티로드> <식샤를 합시다> <마스터쉐프코리아> 등 먹방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만화 『먹는 존재』의 음식들은 전혀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핫플레이스나 특별한 레시피도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등장 음식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다. 그러니까 결국 『먹는 존재』는 우리 삶이 특별한 메뉴나 대박 맛집처럼 화려하게 한방에 터지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주변의 음식처럼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는 거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겁에 질려 도망치는 방식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클로징은 웨딩 케이크가 될까? 아니면 업그레이드 회전초밥이 될까? 적당히 하는 법 없는 이 만화의 최종메뉴가 정말 궁금하다.
< 출처: 에이코믹스 http://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17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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