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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툰 가쉽 앞에 선 당신에게, <대나무숲에서 알립니다>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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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5회 작성일 24-05-2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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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무기력에 빠트리게 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언가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각인시키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점점 한 사람을 고립시키고 몰아세워 혼자라고 생각하게 만든 뒤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드는 결말. 게다가 자신이 결정 내린 일이니, 가해자도 없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마음마저 편안하다. 그런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쉽다. 여기 이 고등학생들도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베드엔딩의 주인공으로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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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학교 별로 존재하는 대나무 숲.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실명을 밝히고 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익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익명은 참으로도 대단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조별 과제를 하다 작은 말다툼이 벌어져 사과하고 싶었는데 미안한 마음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던가,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럴 만한 자리가 나지 않았다던가. 글쓴이나 글의 대상이 되는 모든 관련자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고, 좋은 미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 된다면 대나무 숲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대나무 숲을 이용해 좋은 결말을 이끌어낸 일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강렬한 자극에는 그만한 반응이 오기 마련. 무서운 내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포 영화가 매년 나오는 것처럼, 더욱더 위험한 액션 영화가 앞다투어 그러한 장면을 메인으로 홍보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극을 원한다. 물론, ‘자신이 그 장면 속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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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에서 알립니다>에 나오는 청록 고등학교에서는 모든 제보가 익명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제보한 학생만 익명에 가려진다는 것. 가만히 있다 얻어맞은 격인 제보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이 단 한 가지도 없다. 그저 사나운 맹수들에게 던져져 먹히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중세시대 콜로세움의 검투사들은 맹수 앞에 무기라도 있었지, 제보의 주인공들은 무기도 하나 쥐어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익명과 제보라는 번지르르한 단어 뒤에 숨어 다른 사람의 치부를 드러낸다. 몇몇 개는 치부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정말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 휘두르는 것들도 올라온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를 다른 학생들은 일종의 가쉽으로 이용하고 소비한다. 학생들은 제보의 이유에 자신을 지키기 위함을 들기도 한다. , 제보하지 않으면 제보의 대상이 되어버릴까 봐 타인을 먹이로 던지는 것이다. 그들은 먹이를 계속 주어 대나무숲이 괴물로 성장하게 내버려 두지만 먹이를 주지 않아 대나무숲 스스로가 멈추게 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악을 키우기는 참 쉽지만,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악을 끊어내는 것은 어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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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중요한 것을 잊어간다. 자신이 대나무숲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뿐, 사실 자신들도 온몸에 구멍이 뚫려 그 사이로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쉽을 소비한다. 가볍게는 ‘~가 그랬다더라.’ 하는 인간관계를 겪는 우리가 모두 살면서 한 번, 또는 그 이상으로 들어보았을 이야기를 넘어서서 연예 뉴스 칸에 늘 올라오는 그것들. 이제는 우리의 일상이 된 것들이 바로 '가쉽'이다. 가쉽을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반응이 있을 것이다. 소비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죄책감 없이 즐기는 사람들. 단순 소비가 아니라 가쉽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과 전혀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 '당신은, 우리는 어느 타입의 사람입니까?' 분명한 것은 가쉽을 만드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모두 몸에 구멍이 하나씩 생겨나 그 사이로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좀비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들이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우리도 서서히 좀비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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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마주하기 참 어려운 것이다. 진실과 내가 추구했던 것이, 내가 몸담았던 공간이 일치하면 참으로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살아왔던 곳이 진실과 다르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죄책감이나 불안감, 그러니까 좋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만 한다. 이후로는 고쳐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진실을 바로 코앞에 두고도 눈을 감으려고 하는 것이지. 그게 제일 편하니까. 나는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정말 진실을 무시하는 것만이 가장 좋은 대책일까? 정답은 될 수가 없더라도 좋은 대책안이 된다면 진실을 무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너무 슬프니까. 하지만 나는 독자들에게 단정 지어 이거 하나는 말할 수 있다. 진실을 무시하고, 성장하지 않으려는 것은 대책안 자체가 될 수 없다. 청록중학교 학생들이 그랬듯이 여러분 몸 곳곳에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치즈처럼 구멍이 나서 텅 비어버릴 것이다. 나중에는 자신이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채 흑백 세상 속에 흡수되어 좀비처럼 살아갈 것이다. 유리빌딩에 비친 군중 속에서 자신을 찾아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진실을 무시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무시한다는 말과 같다. 고통스러워도 인정하고 반성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면 구멍들 전부를 메울 수는 없더라도 이제는 구멍이 생기는 것을, 내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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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우리들은 지적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이 역시 진실을 보는 것이 어려운 맥락과 같다. 지적당한 문제를 고치는 것보다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을 없애는 것이 더 빠르다. 문제를 지적하려는 사람을 이상한 눈빛으로 보면서 넌 왜 이렇게 예민해?’ 그렇게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스스로가 제 풀에 지쳐 포기하게. 그렇게 진실을 볼 줄 아는 사람들과 진실은 구덩이 속에 묻혀져 보이지 않게 된다. 잘 되었다. 진실이 사라졌다. 더 이상 불편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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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앞에 대나무 숲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청록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여러분 앞에 진실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웹툰, <대나무숲에서 알립니다.>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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