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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웃음의 미학
: <차원이 다른 만화>
다소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외려 생각을 없애야 읽기 좋은 만화들의 등장이야말로 웹툰이 얼마나 대중적인지, 그리고 바삐 돌아가는 현대에 적합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런 만화들은 대개 앞 뒤가 맞지 않는 전개와 의미없는 맥거핀(히치콕 감독이 영화에서 극적인 줄거리를 역동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해 사용한 이래 보편화된 용어로, 관객이 줄거리를 따라잡지 못하게 하는 히치콕식 속임수 장치)의 남용, 세계관을 깨부수는 설정들이 다수 등장하며 현실은 물론 여태껏 이야기 속에서도 쉽사리 등장하지 않았던 방식이다. 이들은 전의 웹툰과는 '차원이 다르다.' 넘나들 수 있는 세계의 폭과, 사용할 수 있는 소재의 면적이 자유로워 기발한 이야기들을 생산해낸다.
<차원이 다른 만화>의 기본적인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노마진이 전학을 한 학교에서 '이차원'이라는, 운동과 공부, 미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능통하며 얼굴이 잘생긴 아이와 조우하게 된다. 그러나 이 아이는 특이하게도 이차원이었다. 말 그대로, 종이처럼 평면으로 이루어진 존재였으나 이것을 이상하게 느끼는 건 주인공 노마진 뿐이다. 괴상한 것이 오히려 '평범'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노마진이야말로 이상한, 불순물로서 취급된다.
불순물로서 취급받고 싶지 않아 하는, 인간의 공동체 의식은 당연하다. 이런 세계관의 바깥에 있는 메타포적 존재의 소외는 독자로 하여금 본인 스스로도 소외당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독자 역시 노마진과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전학 온 노마진처럼 처음으로 이 세계관을 접했으며 세계관 속 인물들의 일상을 '해괴한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이다. 노마진은 독자들의 대변인이나 다름 없는 위치에 서있다. 이것이 <차원이 다른 만화>가 취하는,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다가오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비일상이 일상으로 변모하는 과정만큼이나 이 특이한, 전에 없을 장르의 웹툰을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의외로 간단하다. 명백하게 드러나질 않는 이야기나 상식 너머의 소재들을 접할 때마다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나 쉽사리 되지 않고, 어느 순간 이해하기를 포기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이해를 포기하면 읽기 쉬운 웹툰'이란 이런 때에 사용된다. 주인공 노마진 역시 자신이 경험하는 비일상을 어느샌가 포기와 체념을 통해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내가 언제부터 얘들이랑 이렇게 가까워졌지'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나 금세 극복해낸다. 이 극복이야말로 적응으로 향하는 완벽한 길이다.
외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음으로서 얻어지는 유희들이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헛웃음의 미학은 박장대소보다 더한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의 웃음, 크지 않은 감정만큼 편안한 게 있을까. 우리가 아주 짧은 감정만으로도 이런 류의 웹툰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 역시 노마진에게서 비롯된다. 노마진은 독자들을 대변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독자들의 감정을 배출하는 존재다, 유일하게 그들의 이상한 행태에 딴지를 걸어주거나 수많은 생각을 해주는 존재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외려 침착해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대변인만으로도 대리 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은 '생각이 없어진다'며 그것들을 비난했다.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언뜻 보면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쉬우나 현대 사회에서 이보다 더 필요한 게 있을까. 너무 많은 생각들을 잠시 쉬게 해주는 통로같은 웹툰이야말로 '현대에 어울리는' 장르 중 하나가 아닐까. <차원이 다른 만화>는 이런 장르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며 적응시키는 힘을 가졌음은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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