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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툰 «케세라세라» - 웹툰계의 주말드라마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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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3회 작성일 24-05-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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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나리자 글작가와 수정 그림작가의 «케세라세라»는 정말이지 독특한 작품입니다. 아니, 문제적이라 해야 할 지, 증상적이라 해야 할 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도발적인 문장으로 리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 작품에서 전형적인 주말드라마의 세계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종편과 케이블 채널에서 워낙 독특한 작품을 앞다퉈 만들어내다보니 평일과 주말의 구분 없이 여러 방송국에서 자신만의 특색을 가진 드라마를 만나볼 수 있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주말드라마’는 곧 공중파 주말드라마를 의미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공중파 주말드라마는 고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저녁시간’이라는 가정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하에, 주말드라마는 주 시청층인 중장년층의 취향에 부합하는 가부장적 보수주의 세계관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자애로운 부모가 마련한 ‘집’이라는 상징적 공간 안에서 자식들은 저마다 다른 자아를 형성하고 꿈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이내 다양한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고 방황하고 말죠. 부모는 그런 자식들을 그저 바라보며 기다려줍니다. 그런 와중에 가부장적 보수주의 질서를 깨뜨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비혼 선언이라거나, 싱글맘이 되기를 선택하거나,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하거나 하는 등의 선택입니다. 이러한 ‘자식의 선택’은 가부장적 보수주의 질서, 즉 부계 사회로서의 가족의 유지와 재생산이라는 질서를 깨뜨리는 선택이 됩니다. 이처럼 ‘질서에 반하는’ 선택은 행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뛰쳐나간 자식들은 언제나 그 선택의 댓가를 치르게 되죠. 고통에 겨워하던 자식들은 ‘Home sweet home’으로 돌아오고, 자애로운 부모는 적당한 타협을 거쳐 다시금 자식의 선택을 수용합니다. 부모 세대는 ‘자식의 선택’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식 세대는 가부장적 보수주의 질서에 편입되어 안정을 누리게 되죠. 이러한 타협과 수용을 통해 ‘그 집 식구’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큰 밥상 앞에 다 같이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말이죠. 가족주의 주말드라마의 이데올로기가 이런 것입니다. 제 아무리 급진적인 변화라도 가족 안에 수용되지 못하면 무의미하며, 한편으로 부모 세대도 자식 세대를 적당히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그 결론은 ‘질서’가 아니면 안 됩니다.


    «케세라세라»에서 발견되는 세계관이 바로 이렇습니다. 희생하는 하니의 선택과 돌아오는 선준의 선택, 그 둘을 흔들지만 결국 둘을 인정하는 주변인물인 예니팡과 동진,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이해하는 덕진과, 둘을 사랑으로 보살폈지만 자신이 바라는 미래가 도래하지 않자 분노하는 선경, 별거가 끝나가고 다시 가까워지는 하니의 부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봉합하고 수용하게 하는 상징적 인물인 두 사람의 딸 란까지. 흩어져 불안했던 가족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 마침내 상호 이해와 수용에 이릅니다. 작가는 ‘케세라세라’가 ‘이루어질 일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하지만, 그것은 운명이 아닌 질서에의 편입인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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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


    제가 놀란 것은, ‘트렌디’함이 무기인 웹툰 분야에서 이렇게 보수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품을 발견했다는 그 사실 자체에 있습니다. 웹툰의 주 향유층인 청년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 트렌디한 연애물도 아닙니다. 연애나 사랑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일상툰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다고 작가의 주관이 뚜렷한 작가주의 웹툰도 아닙니다. 병맛 개그툰은 더더욱 아니죠. 그렇다면 이 작품이 하필 웹툰이어야 할, 다른 장르가 아닌 웹툰 장르에서 창작되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웹툰이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창작에 있어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드라마처럼 매주 시청자를 TV 앞에 붙잡아놓아야 할 이유도, 영화처럼 일정 수 이상의 관객을 모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물론 저는 웹툰이 무조건 순수성과 예술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속적인 연애물도, 밑도 끝도 없는 개그툰도, 노골적인 성인물도 평범한 일상툰도 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웹툰에서까지 주말드라마를 봐야 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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