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자까, <대학일기> - 므르므즈님의 ‘지극히 상업적인 - 대학일기’에 부쳐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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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까, <대학일기>
- 므르므즈님의 ‘지극히 상업적인 - 대학일기’에 부쳐
웹툰가이드에 올라오는 리뷰 중 므르므즈님의 글은 짧은 분량 속에서도 중요한 포인트를 집어내기 때문에 대부분 읽어보고 있다. 그러나 ‘지극히 상업적인 - 대학일기’ 리뷰만큼은 제목부터 결론까지 곤혹스러웠다. 그 곤혹스러움은 어째서 이런 박한 평가를 하셨을까 하는 생각보다도 이전에 쓰셨던 글과는 사뭇 다른 평가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구심에서 오지 않았나 싶다. 이번 리뷰에서는 내가 느낀 당혹감을 설명하고, ‘대학일기’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 봤을 때 이 작품이 비판받는 [공감]같은 작품보다 나은 것은 무엇이며, 다른 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조금 깔끔한 그림체라도 여전히 공간은 최소 한도로 구현되어 있고 패러디 컷을 남발한다. 공감툰인 이상 다른 작품은 없다. 결국 모두 똑같이 노인정에 앉아 그 시절엔 우리가 그랬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 므르므즈, ‘지극히 상업적인 - 대학일기’ 中
‘대학일기’는 공감툰이다. 그러나 ‘대학일기’와 ‘공감.jpg’이 겹치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그 둘이, 더 나아가 공감툰이 모두 같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백번 양보해서 기왕 같다고 말할거라면 최소한 일관된 주장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이 리뷰에서 공감툰이 같다고 말하는 근거는 크게 1) 대학생활이라는 주기적이고 제한된 소재, 2) 공감툰이라는 하위 장르가 가진 구조적 반복으로 나뉜다. 그러나 므르므즈님은 이전에 ‘오민혁 단편선’ 리뷰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소재의 진부함이 곧 만화의 진부함을 불러오진 않는다. (...) 작품을 많이 접할수록 이 틀은 점점 더 그 형식을 갖춰나간다. 이제 평가의 영역은 이 틀을 사용했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사용하였느냐를 따져야 한다. ”
- 므르므즈, ‘단편의 미학 - 오민혁 단편선’ 中
‘대학일기’가 단지 소재의 진부함을 이유로 비판받은 것과는 달리 ‘오민혁 단편선’에 대한 리뷰에서는 소재의 진부함 자체가 만화의 진부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옹호한다.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학일기’에서 장르 형식적으로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따져본 뒤, 그것이 참신했는가 나태했는가를 따져보는 시도가 있었어야 했다.
한편 “대학일기의 소재는 그렇기에 지지는 많이 얻을지언정 수명은 짧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작품은 대학 생활을 넘어서 고등학교 때 시절 이야기, 혹은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공감대로 발을 넓힐 수 밖에 없다.“라는 대목에 주목해보자. ‘대학일기’의 소재의 진부함을 비판하는 시점이 현재가 아니라 본인이 자의적으로 상정한 미래시점이라는 점은 충격적이다.
종합해보자. 므르므즈님의 ‘대학일기’ 리뷰는 본인의 평가 기준에 비춰봤을 때도 일관되지 못했으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시점의 ‘우려되는’ 단점에 대해서 근거 없는 비판이 가해졌다. 므르므즈님의 말마따나 반복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단지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문제다. 그러나 장르문법의 사용에 대해 가정법을 사용하지 않고 지적한 부분은 ‘개그센스’의 표현에 해당하는 ‘음슴체’, ‘인터넷 짤방’, ‘초성체’, ‘패러디’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요소들이 ‘대학일기’ 내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고서 공공의 적으로 자리 잡은 ‘공감.jpg’를 끌고 와 동급으로 묶은 뒤 거칠게 확장하여 공감툰이라는 장르의 사망씩이나 선고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공감툰에 대한 취향 차이라면 인정하겠지만 그보다는 장르에 대한 자신의 몰이해를 평가 대상에 대한 가치 판단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아쉬우며 부당한 일임을 지적하고 싶다.
▲ 자까의 센스와 역량을 엿볼 수 있는 대목
‘대학일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등장인물들의 감정표현이 매우 거칠게 연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카드형식으로 한 컷씩 넘겨가며 보는 ‘컷툰’이라는 포맷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데 가점을 주고 싶다. 위 사례가 이를 적절히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좌측 컷에서 ‘자까’의 오너캐가 시험 공부 중 모르는 문제에 별표를 치고 있다. 시간 압박과 시험 공부 범위의 난해함으로 꽉막힌 머리 속 상태를 답답해 하는 표정과 땀 표시, 독자를 압박하듯 꽉 채워진 캐릭터의 화면배치, 그리고 약간은 붉은 배경색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독자는 다음 컷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좌측으로 스와이핑한다. 그러면 이전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요소들로 컷이 채워진다. 붉은 색 배경에서 푸른 빛의 밤하늘 배경으로, 답답해 하는 표정에서 모든 것을 해탈한 표정으로, 화면을 압박하는 듯한 캐릭터 배치에서 우주 한가운데 떠있는 듯 작아진 배치로.
무엇보다도 ‘시험공부를 하다보니 모르는 문제가 하도 많아 문제에 별표를 너무 많이 쳐버렸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긴 설명을 ‘은하수’라는 단어를 통한 비유로 축약함으로써 독자에게 예상치 못한 반전의 재미를 준다. 이 장면만 놓고 보더라도 ‘대학일기’는 단순한 공감 소재의 나열이 아니라 만화적 표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공감툰의 포인트는 단순히 소재가 무엇인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독자들은 ‘대학생활’이라는 소재에서 공감 포인트를 찾기도 하지만 그 공통된 경험에서 오는 감정 자체에 대해서 공감하기도 한다. 위의 사례를 참고해보자. ‘대학일기’는 단순히 ‘대학생활’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기보다는 나태하고자 하는 욕망의 빈번한 좌절을 만화적인 과장과 비틀기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하는데서 재미를 생산하고 있다. 만약 이 만화의 공감 포인트가 므르므즈님이 지적한 대로 단순히 "저 곳은 우리 젊을 때 냉수 마찰 명소였다"에 그쳐있었다면 대학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중고등학생 독자들에게는 호응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패러디 컷의 남발에 대한 지적 역시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므르므즈님은 이미 ‘구구까까’에 대한 리뷰에서 의견을 피력한바 있다.
▲ 자까가 정말로 패러디를 나태하게 남발하고 있는가?
“작품의 패러디 개그가 적정선을 지키는 지 여부에 따라서 작가의 '역량'은 분명히 갈린다. (...) 단순히 그 상황에 조금 어울리는 단발적인 컷인 개그만을 사용한다면 과연 주인공이 원시시대로 온 의미가 있는가?”
- 므르므즈, ‘신인에 대한 기우일지 모르지만 - 구구까까' 中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작가의 역량은 분명히 갈린다”. 그렇다면 자까는 이 만화에서 패러디 컷을 남발하며 웃음포인트를 의존하고 있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패러디 컷 이외에도 많은 개그요소들이 존재하며 패러디 컷의 사용 자체도 자까 본인의 그림체로 소화시킨 뒤 만화의 맥락 속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단순히 인터넷 주류 소비층을 대상으로 한 공감툰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십 여년간의 한국 웹툰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 차이점에 대해서 므르므즈님이 모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글에서는 그 차이점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독 ‘대학일기’에서 제목에서 밝힌 '지극히 상업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매도에 가까운 박한 평가가 이뤄진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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