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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84회 작성일 24-05-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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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의 한국이 배경인 창작물을 생각해 보면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중심이 되는 역사물 외에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평범한 백성들이 중심이 되거나 정치사회적 변화가 아닌 사건을 다루는 작품은 드물다.

 

창작자들이 그만큼 자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소홀했을 수도 있고,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교육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찌됐든 매우 아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시대배경이 과거라는 이유로 더 많은 배경들, 인물들이 제외되고 제한적인 소재만이 사용되는 것은 창작물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성X한음’ 은 그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웹툰이다. ‘오성X한음’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중기로, 선조가 임금으로 등장한다. 이 웹툰은 선조 재위기간 동안 벌어진 각종 정치적 암투와 전쟁들을 왕(王)이나 고위관료의 시선으로 조명, 해석하기보다 하급관료였던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이 중심이 되어 추리만화의 형식을 빌려 사건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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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엄밀히 말하면 역사적 사건과 큰 관련이 없는 자잘한 사건이 핵심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초중반까지다. 실재했던 인물인 오성과 한음의 발자취와 임란(壬亂) 직전의 시대적 배경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오성X한음’ 역시 뒤로 갈수록 조선 역사의 격렬한 물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오성과 한음이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 그리고 사건이 전개되는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추리물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 적지 않은 분량이 연재된 현재 시점(15.08.24)에도 오성과 한음은 정치인이 아니라 노련한 정치인에 의해 부림당하는

행정 관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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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 로서의 ‘오성X한음’ 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작품의 배경을 저 과거로 되돌리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분명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어떤 장르를 선택했든 간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추리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라,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비해 더 신경 써야 될 부분이 많이 있다.

 

이를 테면 현대에 들어 눈이 부시도록 발전한 첨단수사 기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닥에 딱딱하게 굳은 정체불명의 검은 액체가 있을 때, 21세기에 활동하는 탐정이나 경찰 공무원들은 단지 기묘한 이름의 용액을 뿌려 색깔을 확인하면 간단히 그 액체가 혈액인지 아니면 음료인지 확인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 그런 문명의 혜택을 기대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범죄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극히 제한적이다. 수사기법이 현대에 비해 뒤쳐진 만큼 피의자에 대한 인권의식이나 탐정의 사명의식도 후퇴시킬 생각이 아닌 이상에야, 사건의 구상에도 많은 제한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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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의 범죄 동기나 피해자의 반응도 물론 현대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강산이 수십 번 바뀔 정도로 까마득히 먼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체로 많은 범죄가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보편적인 범죄만을 - 예를 들어 치정에 의한 살인 - 등장시킬 뻔뻔함이 없다면 시대상에 능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작자들이 겪게 될 이러한 난제는 역설적이지만 독자들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작가의 역량이 충분히 뛰어나다면 말이다. 지극히 제한된 수단만을 이용한 수사와 추리, 현재와는 전혀 다른 범죄의 동기와 과정,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범죄 도구들까지. 시간을 저 먼 과거로 되돌림으로써 평범한 사건조차도 신선한 재미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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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X한음’ 은 지금껏 다수의 역사만화를 그린 깊은 내공의 작가의 최신작답게 충분한 역량을 뽐내고 있다. 초반 몇 개의 에피소드가 지나면 이야기의 핵심에 위치한 사건들은 실제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을 각색하거나 상상을 동원하여, 추리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전개된다. 역사에서 다소 벗어난 사건들도 역사 추리만화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인물의 성씨와 본관이 가장 중요한 정황증거로 제시되는 식이다.

 

추리의 논리는 제한된 조건 탓에 약간은 편의적이지만 큰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고 역사에 능통한 독자라면 특히 배가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오성X한음’은 역사 추리만화로서 모범적인 작품으로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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