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연비 나쁜 10대들의 사랑과 우정 ‘공복의 저녁식사’ 무료웹툰 미리보기
페이지 정보
본문
제목은 ‘공복의 저녁식사’이지만 이 작품의 인물들이 ‘공복’인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 것이다. 이 청소년들은 거의 늘 먹고 있으며 먹고 있고 또는 먹고 있고 또한 먹는다. 대개의 경우 창작물에서 맛있게 먹는다는 것, 맛을 즐긴다는 것은 생에 대한 에너지, 삶에 대한 건강한 에너지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주인공 ‘공복희’와 그 친구들이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인연’으로 이어져 있으며 부정적 인물인 민주가 다이어트를 위해 식욕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을 볼 때 이 작품에서 먹는다는 행위도 그러한 의미를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공복희는 첫화부터 먹는다. 무언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도 음식 하나하나의 장점을 찾아 알차게 잘 먹는다. 남자 주인공이 복희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무엇이든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관심을 가지면서다. (저렇게 끝없이 먹어대는데 어떻게 살은 안 찌는지 같은 것은 궁금해하지 않도록 하자. 애초에 저만큼이 들어가는 배의 용적 자체가 미스터리다.) 음식은 끼니를 넘어 모두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행위 그자체이고 잘 먹는 것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다.
(음식에 대한 묘사에 작가는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어 때때로 작품 바깥으로 튀어나가는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공복의 저녁식사’는 어떤 작품일까. 음식의 레시피를 다루는 작품일까, 그 음식에 얽힌 역사나 뒷이야기를 인생과 연결 짓는 작품일까, 다양한 음식의 먹는 법을 소개하는 작품일까, 세상의 온갖 맛있는 음식을 다뤄 다이어트를 방해하는 악마의 작품(?)일까. 굳이 따지자면 이 작품은 ‘맛있게 먹는 행위’ 그 자체를 보여줄 뿐 구체적인 음식과 관계없는 다른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다. 주인공이 맛있게 먹는 것이 순댓국이든 곱창이든 사천짬뽕이든 음식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이 주인공은 삼각김밥도 세상 진미처럼 먹는다.
그럼 어떤 이야기이냐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십대들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다. 맛있는 거 해 먹으면서 우정도 나누고 연애도 하고 좋을 때다 싶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십대의 ‘우정’은 이미 어른이 된 사람의 상상처럼 순수하지도 않고 학교생활은 계산과 정치로 얽혀 있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와 달리 순수하고 단순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의 망상이다. 학교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구성원으로 삼 년간 매일같이 긴 시간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커뮤니티고 그 안의 권력관계와 인간관계 또한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 구성원들은 각자 학교 밖의 권력 관계도 얽혀 있고 가정에서의 개인적 상처와 아픔도 안은 채 ‘학생’이라는 집단으로 묶여 있다. 아이들은 이 커뮤니티에서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찐따’가 되지 않기 위해 ‘잘 나가기’ 위해 눈치 보고 계산하고 사람을 고른다.
얼마나 ‘잘나가는’ 무리에 섞이는지가 학교 커뮤니티에서의 ‘신분’을 결정한다. 집안이 좋고 예쁘고 공부를 잘 하고 화려할수록 ‘잘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친구를 사귀기도 쉽고 따돌림의 대상에서도 벗어난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주인공 공복희에게 먼저 다가와 같이 저녁을 먹자고 손을 내밀어 준 ‘만두’가 그런 아이였다. ‘뚱뚱하고’ ‘꾸밀 줄 모르고’ 어딘가 말투도 이상해 보이는 친구 없는 ‘오타쿠’. 그런 아이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학교에서의 자신의 위치도 ‘그런 아이’와 동급으로 묶이게 되는 일이다.
만두와 잘 맞다고 느끼고 먹을 것은 잘 얻어먹으면서도 복희는 학교에서 만두에게 아는 척 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만두를 무시하고 괴롭힐 때도 앞에 나서서 막아주지 못 한다. 복희와 만두와 저녁만찬 동지가 된 ‘진수’는 복희의 그런 태도를 비난하지만 중학생 때의 트라우마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복희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복희 또한 과거의 자신에게서 벗어나 소중한 친구를 붙잡기 위해 변하기로 마음먹는다. 세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진한 우정을 쌓게 되는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도록 하자!
여러 가지 일들을 거쳐 둘도 없는 친구들이 된 복희와 만두, 진수의 우정은 청춘드라마처럼 반짝거리고 복희가 좋아하는 ‘성찬’도 복희를 좋아하며 연애노선도 핑크빛이니 무엇이 문제이랴 싶겠지만 앞서 말했듯 십대들의 세상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 학교 내의 서열이 강자이든 약자이든 아이들은 아이들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사회 내에서 약자이기 때문이다.
복희만 아픔을 안고 있는 게 아니다. 진수는 ‘알아서 잘 하는’ 형과 모든 것을 비교당하며 자라 스스로도 자신을 포기해버렸다. 성찬은 ‘알아서 잘하는’ 자랑스러운 아들 타이틀에 옥죄여 폭력이 아닌 척 하는 폭력에 짓눌려 있다. 심지어 ‘악역’이라고 독자들이 욕하는 ‘민주’ 또한 완벽을 강요하는 부모의 폭력에 저항할 힘 없는 약자로, 자신보다 힘 없는 타인에게 자신이 받은 폭력을 되풀이하고 있다. 자신을 안에서부터 망가뜨리는 어른들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상처투성이 아이들이 약자끼리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고 발버둥 치며 학교를 삭막한 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들어간다. 그 안에 핀 ‘우정과 사랑’은 ‘함께 먹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씨앗으로부터 자란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성장한 아이들은 각자 누구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게 될까. 끝없이 먹어대는 연비 나쁜 십대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지켜보며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kimmseung-_-v.18.10.24.
- 이전글고란, 기대되는 판타지 사극 24.05.27
- 다음글고등학생의 탈을 쓴 신들의 전쟁, '갓 오브 하이스쿨' 2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