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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툰 «암행전학생» - 청소년 : 복종과 부자유,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갈망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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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90회 작성일 24-05-2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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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합리적인 사회는 없고,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부조리와 갈등은 있어왔다. 그리고 그것이 일정한 사회제도 내에서 해결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해결할 수 있는 월등한 존재를 갈망한다. 고대의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 한국의 무속신앙, 일본의 신토(神道), 메시아의 도래나 전쟁영웅의 등장에 대한 갈구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욕망은 특히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타인’을 욕망하는 것인데, 이러한 욕망 자체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자 보편적인 것이다.


한편 현대 사회의 대부분의 문제와 갈등은 경제적 계급(사회학적 의미의 class)의 문제로 수렴한다. 과학계 및 의료계의 윤리 문제나 전지구적 자원 소비의 문제, 혹은 공장제 식용 가축 생산같은 거시적 관점의 윤리적 문제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회문제, 특히 이해 당사자간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들은 경제적 계급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즉 자신이 속한 경제적 계급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고 입장과 관점이 달라지며 문제 해결 방식도 다르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계급은 그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고착화되는 경향이 강하며 계층이동의 가능성 역시 현저히 낮아진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고착화된 계급은 ‘계급간 차별’을 유발한다. 다시 말해, 계급에 따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하게 나누어지며 그것이 각 계급에 속한 인간 자체에 대한 차별적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이며, 한국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 즉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 대학입시에서의 경쟁과 스트레스 또래집단 내의 계급 분화 및 그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차별적 자기인식(자기 자신을 스스로 누군가의 아래에 있는 존재로, 또 동시에 누군가의 위에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 ‘노스페이스 패딩’으로 대표되는 ‘가지지 않으면 뒤떨어지는’ 물건들의 유행 등의 문제들 역시 사실상 한국사회 자체의 사회경제적 계급과 그 구분 및 차별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따른 ‘증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이미 ‘계급을 차별하는 사회’로서 계층 이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고착화되며 그 계급에 따른 차별이 지속적으로 정당화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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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달영의 신작 «암행전학생»은, 위에서 말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만든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던 작품이기는 하다. 미성년자가 처벌받지 않음으로써 청소년 집단 내의 질서가 오직 힘에 따른 지배와 복종만이 된다는 설정은 물론 허구이며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설정의 현실성이 아니라, 이 설정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자 했느냐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임달영은 적어도 현재 한국 청소년 또래집단의 내부 질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의 청소년들은 ‘복종’이라는 덕목을 가장 먼저 배운다. 사회경제적 계급에 대한 복종, 권위에 대한 복종, 개인의 능력과 그에 따른 차별에 대한 복종, 대학입시라는 제도와 이를 위한 경쟁체제에 대한 복종. 이러한 복종은 바꿔 말하면 ‘힘에 대한 인식’이며 나아가 ‘힘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과 그 달성 불가능성에 따른 좌절’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청소년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러한 질서의 전복을 욕망한다. 나라는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한 구분과 차별은 부당한 것이며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와 평등한 권리의 부여가 더 올바른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정치참여와 의사표현이라는 자유와 권리를 획득하는 성인과 달리, 청소년은 행위의 자유가 철저하게 제약되어있는 존재이다. 청소년은 사회의 질서에 아주 민감하게 영향받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변화시키거나 탈출할 수 있는 행위의 자유가 법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혹은 인식구조적으로 제약되어있는 것이다.


«암행전학생»은 이러한 청소년들의 복종과 부자유를 극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임달영이 이와 같은 세세한 사회분석을 바탕으로 이 작품으로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고자 의도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누구라도 이 작품이 사회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작가 역시 소재의 사회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하고 작품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복종’을 그려내는 에피소드를 보면, 유지민은 최원경을 위시한 무리들(=차별을 생성하는 자)과 그에 동조하는 반 학생들(=암묵적 동조자 혹은 방관자)에 반항하지만 결국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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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유지민의 선택을 납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 청소년들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다시 말해 다른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 청소년들에게는 ‘학교 밖의 자유’가 없다. 학생이 아닌 청소년으로서 사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며 그나마도 대학입시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힘들어진다. 학교 안에 있다해도 대학입시를 거부하면 ‘비(非)학생’으로 취급받는다. 이것은 한국 청소년들의 기본적 조건이 ‘타인의 의지에 복종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 또래집단의 내부 질서 역시 ‘힘에 대한 복종’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복종을 구성원의 기본적 조건으로 하는 또 다른 집단, 즉 군대를 생각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그 구성원의 기본적 조건이 위계질서에 따른 명령과 복종인 한국 군대 - 그 명령이 합리적이냐 아니냐는 고려되지 않는 - 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폭력의 무한한 악순환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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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자유 없는 피복종자에게 필요한 것은 메시아, 즉 구원자이다. 복종의 상태는 고통스러우나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위의 자유는 없는 존재에게 구원자에 대한 갈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암행전학생»은 그러한 자연스러운 욕망을 건드림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전학생’이 막 등장한 현재, 이 구원자는 수많은 고난을 뚫고 구체제를 혁파한 뒤 지배계급을 축출하고 다수 학생들에게 해방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최선의 결말일까? 우리는 이제 더이상 구원자가 없다는 것을 안다. 각자의 삶은 오롯이 각자의 몫이며 나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구원자는 없다. 만일 유일하게 구원자라고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의 각 구성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생각되)는 ‘사회제도’일 것이다. 과연 «암행전학생»이 그러한 문제의식까지 파고들 것인가? 그럴리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고찰하여 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작품 내 체제의 전복과 이를 통한 다수 학생(즉, 독자가 감정이입하는 대상)의 해방을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나는 독자들이 이 작품을 내적 완결성을 가진 결말이 있는 어떤 한 만화로서 읽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는 열린 텍스트로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청소년의 억압과 그 해방이라는 소재는, 그저 찰나의 카타르시스로서 소비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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