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기기괴괴’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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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귀신 이야기’ ‘도시 전설’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패턴과 소재의 반복에 물림을 느껴 본 적이 곧잘 있었을 것이다. 단순한 권선징악의 패턴인 경우가 많다거나 미지의 귀신에 대한 공포를 반복적으로 활용한다거나, 징그러운 그림으로 서사의 빈약함을 때운다거나. 마니아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기담괴담 중 옥석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소재와 표현의 참신함과 서사를 확보한다 해도 ‘약자, 소수자, 시골’ 등을 악마화/타자화함으로써 공포를 유발해 윤리적인 찜찜함을 남기는 작품도 적지 않다. 참신한 소재에 서사가 명징한 괴담, 윤리적 불편함이 적은 기이한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오성대’ 작가의 ‘기기괴괴’를 추천한다.
‘기기괴괴’는 단편 옴니버스로 연재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각 에피소드의 메시지와 패턴이 대개 중복 없이 다양하므로 한 마디로 ‘기기괴괴는 이런 이야기이다’라고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때로는 익숙한 권선징악을 다루기도 하고 근미래 SF 풍의 이야기나 귀신이 나오는 에피소드들도 있으며 드물게 감동적인 이야기나 개그 에피소드도 있다. 기괴한 이야기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뭐든 다루어지는데 ‘기기괴괴’만의 차별화된 점이랄까, 눈여겨볼 부분은 에피소드마다 가지고 오는 참신한 발상과 서사의 단단함이다. 이 작품은 현실에 있을 리 없는 설정을 마르지도 않고 찾아내어 오지만 인물들의 사고와 감정은 지극히 현실원리에 충실해, 현실에 존재할 리 없는 근본 없는 공포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참신한 발상만도 괴담 작가의 미덕일 것이다. ‘기기괴괴’가 옴니버스식 미스터리 연재물 중에는 손에 꼽히는 장기 연재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아이디어 창고라는 감탄도 부족하다. ‘기기괴괴’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매 단편 에피소드 기승전결의 굵은 서사 줄기를 갖추고 있다. 신비하고 이상한 소재를 툭 던지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소재를 활용할 수 있는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하나의 돌을 둘로 나누어 가지고 있으면 꿈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설정은 어떤 이야기를 낳게 될까? 에피소드 처음에 등장해 꿈공유석의 설정을 설명해주는 연인들의 이야기처럼 로맨틱한 이야기일까? 꿈에서조차 만나는 것에 질려버리는 이야기일까?
‘특정 생물을 충분한 수만큼 죽이면 그 생물로 환생해 점차 고등생물로 환생을 반복함으로써 인간으로 다시 환생할 수 있다’는 설정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등생물과 하등생물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화론적 접근을 하게 될까? 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단지 사이비 종교에 대한 이야기일까? 주인공은 어떤 생물로 환생하게 될까?
‘두 개의 버튼 사이를 순간이동 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아이템의 능력을 남용하다 누군가에게 들켜 능력을 빼앗기고 비참해지는 이야기일까? 능력을 이용할수록 부작용이 생기는 이야기일까? 누구나 한번은 탐낼만한 아이템을 주인공은 무슨 일에 사용할까?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새로 조형할 수 있는 성형수’라는 소재로 만나게 될 서사는 또 어떨까?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걸까? 비싼 성형수에 의존하다 비참해지는 이야기인 걸까?
‘시체로 발견된 아이들이 죽음 당시 입고 있던 옷’은 왜 사람마다 기억이 달랐을까? 주변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을 표현한 걸까? 사람들의 다른 기억에 무언가 비밀이 있는 걸까?
‘실패한 인생을 되돌리고자 다시 태어나기 위해 탄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왜 자신과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만났을까? 애초에 왜 엘리베이터에 탄 ‘나’는 두 사람일까?
궁금증들은 작품 속에 모두 답이 있다. 지나친 열린 결말로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오리무중으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뻔한 메시지나 손쉬운 혐오의 담론으로 이 작품의 서사를 예상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독자가 무엇을 상상하며 읽어나가든 ‘기기괴괴’는 한 편 한 편 좋은 의미로 독자의 기대를 배반해 주리라.
‘기기괴괴’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지만 개그 감각의 괴이함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유령이 집안일을 해주는 ‘고스트 홈케어’ 서비스. 죽기 전의 특기를 살려 자본주의 사회의 서비스업에 뛰어든 유령들의 탁월한 서비스가 탐날 정도다.
애완견처럼 가발을 키우고 길들여 자신의 머리로 사용하는 ‘애완 가발’. 머리카락에 암수가 나뉘어 있는 것도 재미있는 발상인데 와중에 암컷이 더 비싸다.
여담이지만 작가의 욕망이 반영된 듯한 꿈의 기계도 나온다. 필자도 갖고 싶다. 기왕이면 내용을 떠올리기만 하면 저절로 글이 써지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
때때로 이전 에피소드에서 만났던 캐릭터들이 다시 등장해 소소한 반가움을 주기도 한다. ‘고스트 홈 케어’ 에피소드와 ‘고스트 인테리어’ 에피소드에 중복으로 등장하는 ‘고스트 매니저’(요즘은 귀신들도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마술사 죽이기’와 ‘제이스의 펜’에서 중복으로 등장하는 마술사 ‘제이스’, ‘탄산 바이러스’와 ‘기괴병원’에 중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을 발견하는 것도 이 옴니버스 작품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여름은 다 가고 가을도 없이 환절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날도 추워졌지만 이번 주말에는 ‘기기괴괴’를 읽으며 오성대 작가가 펼쳐내는 참신한 발상의 기이하고 괴이한 서사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읽고 나면 좀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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