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아쉬운 추리극 - [스포일러] 하이드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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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인격은 참 좋은 소재다. 만일 당신이 글을 쓰다가 전개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대개 다른 인격을 등장시켜서 해결을 볼 수 있다. SF에서 아무런 맥락 없이 등장하는 '머나먼 슈르랑 별에 사는 현자' 만큼 편리한 소재가 바로 이중인격이다. 이 현자님이 SF며 판타지에서 전개를 도와준다면 이중인격은 주로 추리극에서 활약한다. 추리극에서 가장 허를 찌르는 편리한 반전이라고 해두자. 여기서 이중인격이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부류의 변신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등장인물이 클라이막스에 예상치 못한 면모를 보여주며 돌변하는 것을 전부 이른다. 예를 들자면 정말 착한 인물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사람만 수십을 죽인 잔혹한 살인마였다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사용은 반드시 사전에 계획되어 있어야 하며, 복선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뜬금없이 돌변하여 난 원래 이런 놈이라고 외치는 사람은 우리에게 당혹감만 안겨줄 뿐이다. 반전 요소는 재밌게도 알고난 뒤에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존재해야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비뚤어진 집>이 그 예시다. 상당히 놀라운 반전을 가지고 있지만 읽고 나면 모든 단서가 범인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다시 알게 된다.
하이드는 그래서인지 우린 모든 걸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외친다. 프롤로그부터 이중인격을 등장시키며 지금부터 우리가 내세울 깜짝 추리선물을 받으라고 자신 있게 외친다. 세상에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애써 살리려들고 다른 인격이 날 죽이라 도발하는 작품이라니. 끝내주는 구성이다. 두 인격의 치열한 심리전이 예상된다. 하지만 작품은 중요한 순간마다 편리한 현자님을 등장시켜 해결을 본다. 편의점 CCTV에 중요한 증거물이 들어있다면? 갑작스럽지만 천재 해커를 어떤 상황 설명 없이 편의점 CCTV 상황실 안에 밀어 넣고 해킹하게 하면 된다. 주인공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 동기가 필요했다면? 착한 사람을 돌변하게 하면 된다. 물론 이 모든 전개는 단편의 호흡 특성상 어쩔 수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이 갑작스런 출현은 너무 편리해 보인다.
추리 소설에 나오는 범인은 동기를 가지고 있다. 옷걸이를 던졌든, 자기가 찢어버린 연애 소설을 기어코 맞춰서 읽은 뒤에 그 내용을 가지고 비웃었든 살인이 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런 우발적인 동기들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한다는 발상에서 살인을 한다. 저 친구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으니 죽여야겠다는 식으로 저지르기에 당연히 그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다 대고 죽인 다음에 어쩌려고? 라고 물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계획적인 범죄에는 계획적인 마무리가 있어야 한다. 하이드의 살인 위장은 계획적인 범죄다. 원인도 깊은 문제다. 새아버지가 사실 몹쓸 인간이라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에게 새아버지가 없어지면 버티지 못할 테니 자신이 죽은 것으로 해야 된다고 한다.
반드시 그렇게 했어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희생이 극적으로 보이려면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이로 인해서 등장인물들이 얻는 구원. 이 두 가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둘 다 이루지 못했다. 내용을 암만 봐도 굳이 주인공이 살인을 해야 될 동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실종 상태면 찾아다닐 게 뻔하니 그렇게 했다고 말을 해도. 새로운 집과 직장과 신분을 얻는 동안 누군가는 그녀와 실종 상태인 여고생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을 텐데 무사히 살고 있는 걸 보면 문제될 게 전혀 없어 보인다. 반드시 그녀가 죽은 상태여야만 했던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엄마 가슴에 못을 박고 싶지 않단 이유로 아버지를 죽이는 걸 반대했건만, 주인공은 엄마 가슴에 대못도 박았다.
구원을 받았는지 여부도 애매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득을 본 사람은 폭행하고도 증거 하나 없으니 이제 깨끗이 손 털 수 있는 아버지 밖에 없다. 주인공은 여고생을 살해한 살인자가 됐고 하나 엄마는 딸을 잃었고 하나는 졸지에 죽은 사람이 되서 가족도 잃었다. 아이큐 180의 천재가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우릴 설득해야 하는 데 우리에게 자꾸 다른 활로가 있었다고 알려준다.
구성은 깔끔했지만 뒤로 갈수록 급하게 전개되는 게 아쉬웠다. 특히 하나를 찾는 부분은 이전에 복선 하나 없던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어 추리극으로도 별로였다. 캐릭터의 개성은 좋았지만 전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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