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신시 - 역지사지 코즈믹 호러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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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대악당들의 음모를 분쇄시키는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런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충족되어야 할 것은 악당들이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정복’ 이 아니라 ‘멸망’ 이다. 세계정복이야 역사가 시작된 이후 수많은 권력자, 야심가들이 꿈꿔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멸망은 또 다른 경우다. 인류를 멸종시키거나 그에 준하는 파괴를 시행할 만한 동기란 평범한 원한이나 야심에서 비롯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시(神時)’ 에서는 나름대로의 그럴듯한 명분을 제시한다.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세력은 다름 아닌 시간을 관장하는 신들로, 이들은 시간의 신인 동시에 열두 종족을 대표하는 십이지(十二支)이기도 하다. 그들은 처음에 천신에게 권능을 하사받으며 약속한 대로 특정 종족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았으나, 인간에게서 핍박받은 자신의 종족들을 보다 못해 그중 일부가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한다. 인류를 말살하려는 신들과 그들에 반대하는 신들이 벌이는 전쟁, 그것이 웹툰 ‘신시’ 의 핵심 줄거리이다.
이야기는 술(戌), 개의 신이 시체로 발견되며 시작된다. 술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자후(쥐의 신)와 화운(소의 신)은 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저 먼 옛날에서부터 전해진, 새로운 신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고양이의 신으로 추정되는 ‘아리’를 만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장 커다란 - 세계멸망 - 목적을 지닌 악역들의 행동이 설득력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들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해야 할 신이기 이전에 각 종족을 대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다른 종족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지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이라는 종(種)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으며, 그 어떤 종족도 인간의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희생당하는 종을 대표하는, 그것도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는 힘을 가진 절대자가 있다면 여태껏 참아왔다는 것이 더 의아할 지경이다. 인간이 다른 동식물을 지배하는 것 또한 압도적인 무력 덕분이 아니던가?
이 웹툰을 보고 있는 독자들은 아마 대부분 인간이겠지만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보다 그럴듯한 악역들의 행동은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십이지를 신으로 차용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 만화에서는 열두 명(?)의 신이 등장한다. 그들은 고유의 특수한 능력을 - 공간이동, 치유와 파괴, 투명화, 자리 바꿔치기, 세뇌 등등 - 보유하고 있으며 성별도 외모도 제각각이다. 이것은 아주 고전적인 이능력 배틀물의 설정이다. ‘십이지(와 소수의 예외)’ 라는 설정 안에 능력자들을 한정시킴으로써 이야기에 보다 안정감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열두 명이나 되는 인물들에 각자 개성과 고유한 능력을 주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시’ 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수준으로 이런 난제를 해결한 것 같다. 12명의 신은 확실히 한 눈에 구별할 수 있는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을 상징하는 능력에서부터 그림으로 표현되는 외향, 성격, 그들이 어떤 편에 서서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 동기에서부터 과거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물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신들의 비중이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정도면 대단히 성공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스케일의 이야기를 부드럽게 이끌어나가는 것도 작가의 실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아리가 초월자들의 싸움에 휘말리고, 본인이 얽힌 비밀을 파헤치며 결국엔 세계멸망을 막기 위해 나선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 속에 독자들에게 지나치게 빠르거나 급작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늘어진다는 생각도 들지 않도록 사건을 전개하는 것은 까다로운 작업이다.
비록 다소 고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배경과 사건 속에서 이야기는 충분한 재미를 이끌어낸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 귀여워 보이는 그림체와 초반의 다소 코믹스러운 전개와는 별개로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어둡게 변한다. 인간들이 스스로 세계멸망에 저항할 방법은 전혀 없으므로 이 웹툰은 코즈믹 호러스러운 요소도 상당히 강하다. 죄 없는 민간인들 - 분노한 동물신들의 입장에선 절대 동의할 수 없겠지만 - 희생당하는 묘사도 꽤나 적나라하다. 이런 쪽으로 내성이 없는 독자들은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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