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생존을 위해 먹고 먹히는 인간의 군상 <인간의 숲>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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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상식과 믿음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죽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다면, 그 곳에서 당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서둘러 나의 상식과 믿음을 버리고 ‘그들’의 세계에 적응해야 할까? 아니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나의 신념을 지켜야 할까? 황준호 작가의 «인간의 숲»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의 세계에 어느 날 갑자기 놓이게 된 주인공 ‘하루’를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해 나간다.
«인간의 숲»에서 ‘보통 사람’의 표상인 주인공 ‘하루’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을 모아놓은 수용소에서 통제를 벗어난 살인범들 가운데 폭력과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하루가 처해있는 상황은 단지 ‘약육강식’이나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같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그 자체를 포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이다. 모든 개체들이 그냥 존재가 아니라 ‘~로서의’ 존재라고 할 때, 하루의 결단은 지금까지 자신이 의식하든 아니든 지켜왔던 ‘자신으로서의’ 존재 그 자체를 버릴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된다.
하루가 차라리 죽음을 시도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9화에서 하루는 기웅이 충식의 시신을 훼손하는 것을 보고 기절한 뒤 홀로 깨어난다. 죽음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죽음을 시도하지만, 사실 하루에게는 ‘맞서 싸운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루는 그저 경험이 없기에, 너무나 압도적인 공포를 맞닥뜨렸기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차라리 스스로 죽고자 했던 것일까? 그보다는 차마 맞서 싸울 수 없었기에,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또한 ‘나로서의’ 존재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맞서 싸우는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이러한 하루의 선택은 작품 전체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하루는 자신을 위해 (실제로는 아니었지만) 돌아온 재준을 구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차마 전기톱을 휘두르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다. 중요한 것은 그 뒤 하루의 선택이다. 하루는 재준이 자신을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그 사람을 자신은 도와주지 못했다는 데 미안함을 느끼고 재준에게 돌아온다. 기환에게 맞고 있던 재준을 본 하루는 기환에게 당신만 죽을 수도 있느냐고 묻지만, 기환은 모든 사람이 살인을 할 수는 없다고 대답하며 하루에게 ‘죽으러 온 것이냐’고 말한다. 그 직후 하루는 자신의 깨달음, 즉 ‘나는 인간이다’ 라고 선언하며 재준에게 미안함을 표시한다.

바로 이 ‘인간성’이야말로 작 중에서 ‘인간’과 ‘괴물’을 나누는 기준이자 «인간의 숲»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즉 ‘인간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하루라는 인물을 통해 나름대로 대답하는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하루는 결국 수용소를 탈출해 살아 돌아오지만 함께 탈출한 준호와 혜선에게 남자친구와 아버지를 잃고 만다. 하루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어차피 공권력의 협조를 바랄 수 없었기에)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지 않는 한에서의 개인적 처벌을 택한다. 하루는 그 둘을 죽일 수도 있었고 또 그러고 싶었을 테지만, 마지막까지 괴물이 되지 않는 길을 택했다.
끝내 괴물이 되지 않겠다는 결단.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죽음의 위협을 넘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운데서도 끝내 괴물은 되지 않겠다는, 인간으로 남겠다는 하루의 결단은, 타인에 대한 미안함도 공감도 모르는 어떤 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20화 마지막에서 기환은, 미안하다며 재준 앞에서 울고 있는 하루의 머리끈을 풀며 ‘머리 푼 게 낫다’고 말한다.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간 어린 생명들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은, 또 모든 사회적 공정성을 파괴하고 사익을 탐하는 이들은, 타인의 고통이 아무런 울림도 되지 못하는 이들은 기환이라는 괴물과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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