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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99회 작성일 24-05-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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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세기만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해졌다. 그러나 근로시간은 줄었을지언정 여전히 거의 모든 사람들은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함으로써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기본적인 경제활동의 순환이니 당연하다. 노동은 여전히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고 살 것인지는 대단히 중요한 선택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생계까지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까? 현실은 언제나 만만치 않은 법이다. 취미가 곧 직업이 되려면 여러 가지 난관을 뛰어넘어야 한다. 먼저, 시장경제 체제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이란 보통 반복적이고, 정형화 되어 있으며, 동료 근로자와의 조화가 중요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따분하다. 이런 종류의 행위를 취미로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뒤집어 말하면 평범한 사람들이 취미로 가질 법한 일들은 시장에서 많은 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혹은, 극소수의 승리자들이 99%의 몫을 챙겨가는 승자독식의 생태이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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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도 취미가 그럭저럭 돈을 벌어먹을 만한 종류의 것일지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돈을 받고 일을 하려면 당연히 ‘잘’ 해야 된다. 두 명제는 보통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다. 설령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까지 하는 축복을 타고났다고 한들, 의무로 돌변한 취미생활은 고역스럽다.

 

그래서 취미를 직업으로까지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많은 고민이 뒤따른다. ‘색으로 말하다’ 는 3명의 소년소녀의 고민을 다룬 웹툰이다. 신이, 서의, 동인은 비슷한 이유로 혼란에 빠져있는 청소년들이다. 각각 인형 만들기, 그림,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평균 이상’ 으로 잘하며, 또 미래에 프로가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여러 사회구조적, 개인적 이유로 인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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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갈등을 겪는 원인은 매우 현실적이다. 진로 문제로 한 번쯤 방황하지 않은 소년들이 얼마나 있을까.(만약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겠지만) 흔히 진로 문제를 소재로 삼은 창작물에서처럼 극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 셋의 부모는 직접 묘사된 내용이나 정황으로 보아 주인공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꿈을 이루는 데 여러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거나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는다. 셋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치명적인 욕망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고, 꿈을 위해 노력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지도 않다. 만화에서 등장하는 셋은 지극히 평균적인 대한민국 청소년들이며,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어느 정도는 평균 이상으로 우호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색으로 말하다’ 가 셋의 고민을 들어주는 방식도, 나름대로의 답안을 들려주는 과정도 부드럽다. 가출이나 패륜, 범죄는 등장하지 않는다. 무단외박이나 어머니에게 괜한 짜증을 부려본 경험은 누구나 몇 번쯤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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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을 주제로 삼은 ‘색으로 말하다’ 는, 그렇다고 해서 편리한, 혹은 진부한 만화라고 생각하면 매우 곤란하다. 언제나 가장 어려운 것은 현실이고, 현실에서 처한 딜레마다. 작가 역시 단지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에 지나지 않는데, 이렇듯 보편적인 고민에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물며 독자들도 한 번쯤은 직접 고통을 경험했을 문제를 말이다.

 

다행히도 작가는 오만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영리했다. ‘색으로 말하다‘는 고민하는 소년들에게 단지 주변인의 입을 빌어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시 들려줄 뿐이다. 꿈과 고민을 환기시킬 수 있는 색다른 경험과 함께 말이다. 개인이 처한 문제는 보통 사회구조적이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는 반드시 개인적이다. 사회와 개인은 상호 소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 가장 중요한 선택은 본인이 내려야 한다. 창작물 속 인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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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서의, 동인은 ’천연염색‘ 이라는, 다소 색다른 경험을 하고 그것을 통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다. 물론 그 결론 역시 교과서적인 정론에 지나지 않고 현실은 언제나 교과서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셋이 꿈을 이루는 데 성공했을지는 알 수 없다. 만화 또한 불확실한 미래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만화의 목적과 한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의 높은 벽 사이에서 고민하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안타깝지만 한국에서는 명쾌한 해답은 고사하고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멘토조차 찾기 어려우니까. 이 만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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