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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4회 작성일 24-05-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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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ラフ)]


아다치 미츠루(あだち充) | 쇼가쿠칸(小学館) / 대원씨아이 | 1987년 연재 시작 | 12권(애장판 6권) 완결



“아- 아- 여기는 니노미야 아미. 들리나요? 지금은 8월 25일 금요일 오후 9시 25분 31초, 32초, 33…. 기온 28도, 맑음. 미풍…. 듣고 있나요? 당신을 좋아합니다. 여기는 니노미야 아미. 야마토 케이스케, 응답하라. 오버!”


– <러프> 마지막 화, 테이프에 녹음된 아미의 고백



아다치 미츠루는 환갑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인생은 60부터라는 요즘 이 정도는 대수로운 축에 끼지도 못한다. 하지만 1970년에 데뷔해 40년이 넘는 내내 늘 청춘과 스포츠에 방점이 찍힌 작품을 고수하는 것만큼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특별한 일이 되어가는 듯하다. 강산이 4번 넘게 바뀌는 동안 그가 그리는 캐릭터들은 늘 무심한 표정을 지은 채 비슷한 옷을 입고, 그 흔한 핸드폰 하나 없이, 뜨뜻미지근하게 스포츠에 매달리며, 물처럼 스며드는 연애를 한다. 그럼에도 많은 팬들은 그만의 유일무이한 스타일에 여전히 매료되곤 한다.


스포츠를 발라내고 청춘과 순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에서도 아다치만의 색깔은 짙게 묻어난다.  <일곱빛깔 무지개(虹色とうがらし)> 같은 시대극(하지만 역사 고증과는 무관할 걸 알았는지 처음부터 에도시대가 아니라 지구 아닌 다른 별, 미래라 못 박았다)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다치 미츠루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청춘, 그리고 ‘야구’다. 그의 대표작은 여전히 <터치>와

로, 올드팬은 <터치>를, 비교적 최근의 팬은

를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다. 이는 2012년 6월부터 <겟산(ゲッサン, 월간 소년선데이)>에 연재를 시작한 를 통해서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1화가 게재된 <겟산> 2012년 6월호는 금세 소진되어 증쇄분조차 독자들의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 나머지 1화를 <겟산> 7월호와 <주간 소년선데이> 2012년 28호에 재게재하는 데 이르렀다. 이는 가 <터치>의 배경으로부터 26년 후를 무대 삼으며 <터치>의 영향력에 십분 기댄 작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아다치의 두 가지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청춘’과 ‘야구’ 중 야구는 주요한 코드일지언정 필수요소는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본선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영광이라는 고시엔(甲子園) 무대와 이를 목표로 삼은 고교야구의 주인공은 등장하지만, 지독한 훈련이나 야구 기술 따위는 개입하지 않는다. 심지어 반드시 야구여야 할 필요성도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다. 근작 <크로스게임>에서도 아다치의 야구는 그저 시속 160km의 공을 던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데 불과했다. 오히려 일본 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를 소재로 삼기 위해 버릴 수밖에 없던 것들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한 팀에 최소 9명이 필요한스포츠에서 한 명의 히어로를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조연들은 (그의 작품이 늘 그렇듯) 외모로 무시당하고 실력으로 괄시당하며 한 줌 먼지 같은 존재감으로 머릿수를 채우기 급급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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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는 그 많은 야구만화를 비집고 태어난, 아다치 미츠루 유일의 수영만화다. 수영은 야구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심플한 스포츠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야구가 그랬듯 단지 등수와 기록에 의존해 누가 더 빠른가를 겨루는 것만으로도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실제로 인기로 따지면 야구에 미치지 못하지만, 수영이라는 스포츠 자체의 매력은 오히려 더 생동감 있게 부각된다. 개인 스포츠라는 점은 오히려 주인공 야마토 케이스케 외의 인물들에게도 널리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계기가 된다. 케이스케와 더불어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케이스케의 친구들은 다른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그와 또 다른 매력이 부각됨으로써 아다치 미츠루의 어떤 만화보다도 탄탄한 조연진을 구축한다. 게다가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던 야구가 서서히 목적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 수영으로 전치되었을 때, 이제는 “다만 다음에 물에 빠진 아미를 구하는 건 절대로 저이고 싶습니다.”라는, 야구로써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실로 드라마틱한 각오 또한 가능해졌다.


중학 시절 내내 100m 자유형 부문 전국 3위에 머문 야마토 케이스케에게 있어 전국 3위라는 기록은 앞에 2명‘씩’이나 있는 자랑거리도 못되는 일이다. 그동안 아다치 미츠루의 주인공들이 그랬듯, 그 역시 스포츠에 모든 걸 투사하는 열혈 스포츠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고교 입학하자마자 자유형에 뜻을 접고 평영으로 전향하고자 한다.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그는 “졌을 때의 분함을 계기로 분발한다든지, 자기 힘을 120% 발휘한다든지 하는… 그런 기력, 집념, 근성 같은 것이 좀 부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케이스케가 같은 경영부(競泳部) 소속 동급생이자 (알고 보니) 소꿉친구였던 니노미야 아미와 맺어지기 위해 차츰 진정으로 노력하고 올라서서 라이벌인 나카니시 히로키와 겨루는 최종회까지, 니노미야 아미와의 복잡 미묘한 관계는 수영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할수록 스스로 두고 있던 아미와의 거리도 차츰 줄어든다. 아니, 아미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케이스케는 그제야 진심으로 승리를 갈구한다. 케이스케는 바다에 빠진 아미를 구출하기 위해 전국 기록보유자인 히로키와 함께 물에 뛰어들면서 마침내 껍질을 깨기 시작한다. 아미를 구조한 히로키가 아미에게 인공호흡하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케이스케. 그는 늦은 밤 자신의 방에 붙어 있던 히로키의 포스터를 조용히 떼어낸다. 비로소 그에게 동경의 대상이 아닌, 넘어서야 할 라이벌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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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츠루의 주인공들은 그동안 스포츠만화를 지배하던 ‘열혈’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타고난 실력은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써볼 생각은 하지 않는 뭐든지 대충 대충인 느긋한 인물들. 케이스케 역시 늘 껄끄러운 존재였던 아미에게 점차 호감을 느끼고도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수영 역시 그에게 그런 것이고. 하지만 아미의 바다 사고 이후 케이스케는 변한다. 전국 1위라는 위업조차 대수롭지 않다는 듯 치부하면서까지 여주인공을 최상의 트로피로 만들곤 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전국 3위에서 시작해 한 계단씩 밟아가는 케이스케의 변화는 수영이라는 스포츠와 만나 비로소 케이스케의 성장과 사랑을 긴밀히 엮어내는 데 성공한다. 수영의 승자가 아미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드디어 진심으로 노력하는 케이스케의 변화를 통해 아미는 트로피가 아니라 성장하는 케이스케를 보여주는 면밀한 척도이자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케이스케와 히로키의 레이스가 시작됨과 동시에 작품이 마무리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그렇다면 청춘과 연애의 키워드만으로 본 <러프>는 어떨까. 아다치의 팬이라면 이미 캐릭터 얼굴만 봐도 훤히 그려지는 뻔한 연애 관계도 내에서 둘의 관계는 (세상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그러하듯) 이번에도 상당히 시원찮은 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종종 의붓남매라든지 이복남매, 심지어 의붓아버지와 딸의 관계 등으로 심각한 경계를 그은 후 미묘한 감정들을 능숙하게 주무르며 결코 무겁지 않은 러브스토리를 요리하던 작품에 비한다면 약소한 편. 할아버지대부터 전통과자점으로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왔던 야마토가와 니노미야가의 관계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가문간 원한관계로 대치중이다. 하지만 그리 심각하진 않아 아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정도. 오히려 어떤 이유에서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의식해왔으며, 또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엔 소꿉친구이기도 했던 과거가 이 둘을 처음부터 ‘맺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덕분에 우연을 연이어 배치하며 남녀주인공을 맺는 아다치의 방식은 <러프>에서도 여전하다. 이를 스스로도 의식한 나머지 때때로 작가 자신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변명과 너스레를 떨기도 하지만, <러프>의 경우엔 외려 떨어지려 하지만 결국 맺어질 수밖에 없는 둘의 관계가 우연과 인연의 의미를 매순간 역전시키곤 한다.


자연히 둘의 관계는 쉽지 않다. 우선 재벌 후계자이자 일본 내 100m 수영 기록을 갖고 있는 나카니시 히로키의 존재부터가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아미와 어울렸고 또 양가에서는 아미와의 결혼까지 추진하는 히로키의 입장에서야 오히려 케이스케가 굴러온 돌이겠지만, 케이스케에게 히로키는 동경하는 선수요, 넘을 수 없는 산이다. 때문에 케이스케는 마치 수영처럼 아미와도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데 만족한다. 언제나 거리를 두고 걷는 두 사람의 모습, 마음과 달리 미적지근한 말과 행동이 오히려 더 애틋하다. 아미의 마음이 표현되는 방식 또한 비슷하다. 다이빙선수인 아미는 케이스케가 지켜볼 때 확연히 좋은 기록을 내고, 케이스케와 함께 벚꽃길을 걷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돌아 문병 간다. 대사가 없는 동일한 그림을 연이어 배치해 인물에게 잠깐의 침묵을 부여하는 방식 또한 주효하다. 이를 통해 서로를 좋아하지만 자존심이랄지 주변의 시선, 혹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케이스케 본연의 성격으로 인해 내색할 수는 없는 상황과 감정 또한 유려하게 표현된다.





아다치 미츠루는 매 챕터의 제목을 일상어들로 이루어진, 해당 챕터 내에 속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사로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별것 아닌 대사들이 상황에 따라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크고 작은 기법은 케이스케와 아미의 미묘한 관계 안에서 여전히 빛난다. 이를테면 스키장에서 나뒹군 케이스케에게 아미가 다가가 괜찮냐며 말을 건넨다. 케이스케는 “유감이네. 인대라도 다쳤으면 히로키 씨 앞에서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라며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자신의 재활 훈련을 위해 아미를 구속하고 있는 히로키를 언급한다. 순전히 농담으로. 하지만 이내 울먹이는 아미에게 뺨을 맞는다. 아미가 떠난 직후 뒤늦게 다가온 친구들이 다시금 케이스케에 괜찮냐고 묻는다. 표정을 컷에 드러내지 않은 케이스케는 말한다. “죽을 것 같다.”고.


청춘과 스포츠를 다루되 주인공에게 스포츠가 그러하듯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최대 장기는 뜨겁지도 하지만 차갑지도 않은 감정선을 유지하며 긴 여운을 들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케이스케와 재활에 성공한 히로키의 레이스가 시작된 순간, 고장 난 줄 알았던 케이스케의 워크맨이 돌아가며 들리는 아미의 고백은 끝까지 예측할 수 없던 이야기에 비로소 완벽한 결말을 더한다. 의지박약의 주인공과 함께 잔잔한 사랑과 예정된 승리를 만들어가기에 여념 없는 아다치의 만화. 그렇지만, <러프>만큼은 ‘뜨거운 여름’으로 남아 여전히 누구나의 잠든 청춘을 일깨운다.




<출처: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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