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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 무엇이든 주머니에서 마지막으로 꺼낸 것
일본에서 나온 <21세기에 남을 명작 망가 베스트 100>이라는 책이 있다. 일본만화유산진흥위원회라는 곳에서 만화평론가나 편집자 등 만화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일반 만화애호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뽑은 100편의 걸작 만화를 담은 책이다. 수많은 일본 만화 중에서 과연 1등을 고를 수 있을까?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고, 나이와 성별에 따라서도 선호도가 바뀐다.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만화와 일반 독자들이 좋아하는 만화도 상당히 다르다. 그러니 선정이 100% 객관적이고 정확하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이런 ‘순위 매기기’는 필요하다. 영화도 한 번씩은 베스트 100 같은 것을 뽑는다. 대체로 1위는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이라 지루하지만, 10위를 넘어가면 변동이 심한 편이다. 흥행순위가 아닌 예술작품에 순위 매기기가 어설픈 구석은 있지만, 그런 일목요연함은 전체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동안 어떤 만화들이 있었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지, 어떤 만화가 새롭게 평가를 받았는지 등을 살피는 것은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의 순위를 보면, 10위에 든 작품은 <도라에몽> <내일의 죠> <북두의 권> <블랙 잭> <아키라> <드래곤 볼> <슬램 덩크> <불새> <터치> <고르고 13>이다. 목록을 보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대중적인 선호도가 고려된 듯 하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시대를 뛰어넘어 영원한 고전으로 살아남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일본 만화의 신神인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이 두 편 있고, 치바 테츠야와 오토모 가츠히로 처럼 한 시대의 이정표를 남긴 작가의 대표작도 있다. 이 리스트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대중이 끊임없이 보고 즐기는 만화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1위가 <도라에몽>이라는 점은 100% 동감이다. 후지코. F. 후지오, <도라에몽>은 어린 시절의 꿈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최고의 작품이다. <도라에몽>은 남녀와 연령을 가리지 않고 고른 지지를 얻었다. 물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은 단연 10대다. 어린 시절 상상력을 총동원하던 ‘꿈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도라에몽>은 최상의 경험을 안겨준다. 인간존중의 사상, 다채로운 발상, 일상생활과 SF의 결합 등 독자들이 말하는 <도라에몽>의 위대함은 끝이 없다. 어린 시절에 보는 <도라에몽>은 상상력의 낙원이고, 성인이 되어 보는 <도라에몽>은 여전히 남아 있는 동심의 세계를 무한대로 확장시켜 준다. 1970년에 시작된 <도라에몽>은 작가가 사망한 지금도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계속 만들어지는 등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국민 만화다.
<도라에몽>의 주인공은 도라에몽과 노비타다. 지금은 도라에몽이지만, 오래 전 국내에는 ‘동짜몽’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적도 있었다. 국산 작명인 ‘동짜몽’은 ‘동그랗고 짜리몽땅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인데 도라에몽 못지않게 멋진 이름이다. 노비타는 찡구, 진구 등의 한국식 이름을 거듭했다. <도라에몽>은 미래세계에서 노비타의 손자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머리도 나쁘고, 힘도 없고, 용기도 없이 착하기만 한 노비타. 힘센 쟈이안과 머리 좋고 부잣집 아들인 스네오에게 매일같이 골탕 먹고 당하기만 하는 노비타의 미래는 불을 보듯 훤하다. 직장에서도 쫓겨나고, 사업을 해도 망하고 결국은 빚만 지고 죽어가지 않을까. 그 덕에 노비타가 죽은 한참 후에도 손자는 빚 때문에 등골이 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과거로 가서 할아버지 노비타를 도와주는 것이다. 공부도 하고 할 일이 많으니 자신이 남을 수는 없고 대신 만능 로봇 도라에몽을 붙여준다. 그래서 도라에몽은 노비타의 곁에서, 노비타의 미래가 불행해지지 않도록 보살펴주는 일을 시작한다.
도라에몽에게는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요술 주머니가 있다. 배 한복판에 달려있는 주머니에서 온갖 것이 나온다. 어디로든 가는 문이 있고, 모든 것을 작거나 크게 만드는 광선총이 있고, 간단하게 머리에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도 있다. 45권의 만화책 안에는 우리가 꿈꾸었던 ‘이런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충족시켜주는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도라에몽이 함께 하며 우리의 노비타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로 <도라에몽>이 전개되면 얼마나 심심할까. 노비타는 여전히 유약하고 소심하다. 도라에몽이 도와준다 해도 타고난 성정이 바뀌지는 않는다. 게다가 도라에몽도 한계가 있다. 고양이를 닮은 로봇 주제에 도라에몽은 쥐를 무서워하고, 도라야끼의 유혹을 결코 물리치지 못하고, 사소한 실수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노비타 못지않은 사고뭉치다. 도라에몽과 노비타는 꿈의 세계를 함께 하면서 수많은 실수와 사고를 연발한다. 그리고, 그리고 노비타는 성장한다. 아주 조금씩,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늘 ‘도와줘’란 말을 반복하며 도라에몽에게 매달리던 노비타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30년 동안 변함없는 인기를 자랑하는 <도라에몽>에는 3개의 ‘완결’편이 있다. 작가는 그만 마치고 싶었지만, 독자의 성원 때문에 다시 연재를 하다 보니 결국 도라에몽이 3번이나 노비타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처음 본 완결편에서 노비타는 떠나야 하는 도라에몽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쟈이안에게 맞으면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퉁퉁 부은 모습으로 울며 이별을 하고 잠이 든 노비타는 아침이 되어 홀로 깨어난다. 더 이상 ‘도와줘’라며 매달릴 도라에몽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노비타는 침착하고 태연하게 그 상황을 맞이한다. 꿈의 세계가 없어도, 아니 거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노비타는 성장한 것이다. 꿈의 세계는 언제나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안에 갇혀서 살아갈 수는 없다. 꿈의 세계는 우리의 현실과 공존하는 것이다. <도라에몽>은 꿈과 상상력의 위대함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도라에몽>은 21세기만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의 곁에 남을 ‘즐거운’ 만화다.
<출처: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4495#!pretty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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