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툰 더 퀸 : 침묵의 교실 - 방관자들의 이야기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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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침묵하는 교실에 대한 이야기다. 한때 비슷한 제목의 드라마 여왕의 교실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독자들의 말을 듣기도 했지만, 사실 이 웹툰이 먼저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 드라마 원작을 각색해서 나온 한국판 여왕의 교실과 이 ‘더 퀸 : 침묵의 교실' 은 사실 비슷한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내용이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평등해질 수 있을까'
프롤로그의 이 말이 인상적이다. 오래전에 이 웹툰을 다 읽은 필자로서는 마지막 장면과 프롤로그의 이 한마디에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기분이다. 필자처럼 앉아서 얘기하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많은 사람에게 상황이 있는 스토리를 풀어내고 그 안으로 독자들을 밀어 넣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임은 분명하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풀어내어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아닐지는 독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전학을 자주 다닌 여주인공 정아. 그의 부모님에게는 사고를 치지 않고 적응을 잘하는 것이 최우선인 듯 보인다. 정아는 이미 어느 정도 요령이 있다고 자신을 믿고 있다. 그녀의 요령이란, 첫째 튀지 않는 것과 둘째 교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 셋째 교실에서 제일 약한 자를 파악하는 것. 요령이 있다고 믿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이 교실의 실질적 주인인 유리에게 젓가락질이 서툴러서 귀엽다는 해서는 안될 말을 농담 삼아하게 되며 유리 그룹의 분위기는 싸해진다. 개인적으로 현재 연재 중인 공복의 저녁식사에 나오는 구조와 비슷한 설정처럼 보인다. 설령 정아가 유리에게 이런 말실수를 하지 않았다 쳐도, 그녀는 어떻게 서든지 유리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본의 아니게 했을 것이고, 그렇게 은근 슬쩍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멋대로인 성격의 유리 때문에 매화 살얼음 판을 걷는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된다. 반장 무리가 정아에게 말을 걸어주며 정아는 반에서 공식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햇님이를 바라보며 나는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유리가 다시 다가오게 되면서 반장 무리는 자연스레 정아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되고, 여기서 정아는 반장 무리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더더욱 유리 그룹과 더 친해지게 된다. 하지만 이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느껴지는 평화로움은 무엇일까..?
이 작품은 단순한 왕따 문제는 아니다.
그걸 방관하고 있었던 우리의 이야기. 그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미묘한 신경전과 눈치싸움의 게임판이다. 유리는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룹의 아이들을 시켜서 대신 가해자 역할을 하게끔 만들고, 자신은 뒤에서 웃으며 그 상황을 즐기는 전형적인 우리 사회의 권력자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자신이 타깃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흐름대로 흘러가는 것은 현재 사회의 병든 모습과도 많이 닮아 보인다. 알면서도 방관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초반 정아의 아버지가 사고 치지 말라는 부분에서 사실 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사고를 하게 된 것도 우리가 기성세대에게 물려받은 생활습관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고를 친다는 것도 대부분은 외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천재지변과 같다. 똥이 더러우니까 피한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그 똥과 같은 곳에 매일매일 같은 교실 안에서 하루의 반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게 문제인 거다.
길에 있는 건 피해 갈 수가 있지만, 매일 보는 것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좀 다른 문제 아닌가. 더더군다나 그 똥이 나에게 계속 접근해 온다면. 나에게 그 똥이 묻는 것은 어찌 보면 시간문제다. 자식을 기르면서 문제가 생기길 바라지 않는 것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아무 일도 일어나면 안 된다보다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 항상 경우의 수를 생각해 놓는 게 오히려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작게 든 크게 든 학교 내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서 따돌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본 것이 사실일 것이다.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만 존재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더 많은 햇님이 같은 희생자가 사회에서 나오기 전에, 유리 같은 소수의 집단에게 다수가 굴복하는 일은 없게끔 우리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서는 왕따라는 개념 자체가 과거의 먼 이야기가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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