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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툰 노루 - 압도적인 절망 속에서 의미를 갈구하다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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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33회 작성일 24-05-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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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스로가 선택하지 않은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창작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창작은 예술가의 상상과 철학을 원천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창작자, 예술가들에게 녹록치 않고 그들은 종종 여러 가지 이유로 타인이 제시한 소재와 주제를 이야기한다. 공모전이나 의뢰를 받은 프리랜서, 다수가 함께하는 프로젝트, 기타 등등 이유는 다양하다.

 

이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보통 창작자의 역량을 해치기 쉽고, 자연히 결과물도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창작자가 정해진 소재 내지는 주제라는 틀에 갇혀 마음껏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라, 정해진 틀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녹아내는 데 성공한 훌륭한 작품들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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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호 작가의 웹툰 ‘노루’ 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노루는 주제(“기후변화”)는 물론이고 회수(12~20회)까지 정해진 기획만화로, 주한영국문화원과 주한 영국대사의 후원을 받아 그려졌다. 까다로운 제한에도 불구하고 노루는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웹툰을 시종일관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범(凡)인류적인 절망이다. 이것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을 ‘개인적’인 절망과는 질이 다르다. 절망의 깊이를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기후변화로 지구 전체가 불모지(不毛地)로 망가져버린 세계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다. 적어도 생명체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모든 살아있는 유기물은 생명을 유지할 식량과 물을 필요로 한다. 온통 모래와 흙으로 가득한 대지에서는 물도, 식량도 구할 수 없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인간의 힘으로 달리 어찌할 방법도 없다.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허락되지 않은 개인적인 절망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내려진 압도적인 절망이 작품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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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연합’ 과 ‘공존’ 은 그 압도적인 절망 속을 비추는 실낱같은 희망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들은 ‘공존’ 이라고 명명한 비밀스러운 장소에 환경을 되살리고 문명을 새로이 구축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 사이에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다. 세계연합의 구성원들은 붉은 노루가 그려진 옷을 입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노루’ 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었다. 이 작품의 화자이자 외계에서 온 관찰자가 마주친 지구인에게 붙인 이름이다. 그는 문명이 건재한 외계의 행성에서 왔으며 첨단 카메라로 지구를 촬영한다. 외계인은 노루를 촬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쫓는다.

 

노루는 세계연합의 구성원으로 난민들을 보다 나은 곳으로 안내하는 ‘운반팀’ 에 속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운반팀은 사실상 존재의의를 상실했고, 그 일원인 ‘노루’ 역시 다른 대다수의 지구인들과 똑같이 시한부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한편 노루는 사람들이 가진 세계연합에 대한 기대를 부정하고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고 조언한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는 스스로를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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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바깥에서 온 외계인을 제외하면 지구인들의 운명은 모두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식량과 물이 떨어지면 그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운명적인 죽음에서 자유로운 관찰자는 그런 지구인들을 영상에 담는다.

 

어쩌면 사람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찾아올 죽음에서 초연(超然)할 수도 있다. 시기와 원인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 죽음은 예정된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는 그렇다.(아마 100년이 지난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먹고 마실 것이 없어 맞게 되는, 마지막에 끔찍한 고통을 수반할 것이며 또 기대할 수 있는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죽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불로불사(不老不死)를 희망하지 않더라도 자연사와는 거리가 먼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일 정신의 소유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히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만 가능할 뿐 결말은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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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가장 먼저 눈앞에 직면한 죽음의 그림자, 배고픔과 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식량을 나눠주는 노루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또 그를 습격하여 식량을 강탈한다. 죽음에 대한 태도 이전에 생명으로서의 본능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다시 언급하지만 죽음은 결국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해진 운명 앞에서 좌절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 시기가 얼마만큼 앞당겨졌다 해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는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혹은 1년. 시간이 얼마나 남았든 생명체로서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지면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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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연합' 의 존재는 사람들의 의지를 가장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파괴적인 재앙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이들은 언제나 있다. 세계연합은 자신들의 생존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거창한 이름처럼 전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자신들의 한계를 명백히 알고 있고 그 한계 속에서나마 미래를 준비한다.

 

물론 세계연합은 특별하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연합과는 달리 그 어떤 미래도 볼 수 없는 사람들조차 그렇다.

 

고립된 건물 속에 오랫동안 홀로 갇혀 있던 여자는 심지어 제한된 식량과 물을 나눠주면서까지 사람과의 대화를 갈구한다. 전해 들었던 꿈같은 희망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한다. 노루는 여자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약속을 하고 남은 시간 길을 떠난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 가까워졌을 때 비록 이미 실패한 희망일지라도 그 모습을 확인하려고 한다. 다시 절망할 뿐일지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이기 이전에 생명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거부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이기 때문에 죽음에 잡아먹혀 무너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다. 관찰자의 카메라에 잡힌 사람들의 모습은 그러했다. 웹툰 ‘노루’에 등장한 사람들은 그랬다. 그들은 히어로 영화 속 영웅이 아니었고 전지구적 재앙 앞에 무능력했으며 생존의 욕구에 지배당해 폭력을 일삼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랬다.

 

어쩌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들이 가진 또 다른 본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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