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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4회 작성일 24-05-2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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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으로 와요(部屋においでよ)]

하라 히데노리(原秀則) | 쇼가쿠칸(小学館) / 대원 | 1990년 연재 시작 | 7권 완결



“카메라맨이 충실하게 모델을 바라보고 모델도 충실하게 카메라맨과 마주해야 해. 그럴 때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오지. 하지만… 만약 어느 한 쪽이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면…”

 <내 집으로 와요> 5권 중



<내 집으로 와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 장면이다. 연인이었던 시오무라 미키오와 헤어지고 둘이 함께 살던 집에서 이사 가는 날, 미즈사와 아야는 마지막 짐을 챙겨 집을 나서면서 텅 빈 방 안을 바라본다. 방 안에는 둘이 나누었던 온갖 말들이 들어차 있다. 사랑의 밀어, 싸움의 말, 화해의 말, 이별의 말.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반복했던, 영원할 줄 알았던 일상의 대화들. 이윽고 아야가 사라지고 나면 방 안을 가득 채운 말들도 모두 사라지고 텅 빈 공간 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앞선 장면과 같은 앵글, 같은 프레임으로 구현된 이 두 번째 컷은 아야가 바라보던 빈 방과 완전히 같은 공간, 같은 장면이다. 그래서 공허함은 더욱 쓸쓸히 다가온다. 아마 누군가를 떠난다는 것, 누군가가 떠나간다는 것 역시 그런 심상에 가까우리라.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 새로운 사람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  둘이 함께 했던 시간으로 가득 찬 순간들이 순식간에 공허한 과거의 일이 되는 것 같은…….


작가 하라 히데노리는 다루는 소재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아다치 미츠루와 종종 비교되곤 한다. 그의 진면목이 아다치 미츠루와 같은 ‘청춘’이나 ‘연애’에 있는 건 사실이다(아다치 미츠루만큼은 아니지만 야구 역시 그의 주요한 소재 중 하나다). 그렇다곤 해도 어쩐지 그를 아다치 미츠루와 같은 선상에 놓인 ‘청춘 작가’라 일컫는 건 참 낯설다. 그의 청춘들 역시 꿈을 좇고 사랑하고 좌절하는 여느 청춘들과 별반 다르진 않다. 하지만 무심한 듯 시크한 아다치 미츠루의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르다. 하라 히데노리의 캐릭터들은 누구보다 노력하고 고민하지만, 늘 좌절하거나 이별하고 그 때문에 종종 오열한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라는 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하라 히데노리의 청춘들은 늘 나락에서 허덕인다. 스스로 빠져나오려 애쓴다 할지라도 세상이 다시 그를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 이러니 성공과 사랑이 양립할 수 있을까?  꿈같은 일이다. 연인이 되었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 완전히 헤어지기까지를 그린 <내 집으로 와요>는 달콤한 제목과는 달리 처음부터 쓸쓸히, 아니 어쩌면 시작부터 담담하게 이별의 끝을 향해 죽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랑과 성공을 한데 엮어 결승점에 두고 질주하는 아다치 미츠루의 달콤한 청춘들과는 애초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단골 술집에서 아야와 즐거운 밤을 보낸 미키오는 이튿날 아야의 자취방에서 눈을 뜬다. 이른바 술김에 벌인 원나잇. 그러나 서로 호감을 갖게 된 둘은 진짜 연애를 시작한다. 미키오보다 5살 연상인 아야는 피아노 학원 강사와 연주 아르바이트를 하는 피아니스트. W대학(아마도 명문 와세다대) 사진 동아리 소속 미키오는 진지한 마음으로 사진가를 목표하는 대학생. 세상 모든 연인이 그렇듯, 취미나 생활방식, 살아온 길도 앞으로의 목표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가면서 자연스레 동거를 시작한다.


의문문으로 이루어진 매 챕터의 제목은 미키오와 아야에게 건네는 질문이자 동시에 독자에게 향하는 질문이 된다. 이는 서툰 연애 초기부터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애의 끝까지, 매 순간을 명쾌하게 압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 집으로 와요!?’ ‘둘이 있을 때 뭘 하나요?’로 시작한 질문은 ‘이별인가요?’ ‘정말 이별인가요?’를 거쳐 ‘어째서, 헤어졌나요?’ ‘그곳, 떠나가나요?’를 향한다. 영원히 행복할 줄만 알았던 연인은 아야가 뜻하지 않게 앨범을 내고 피아니스트로서 데뷔하면서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꿈을 실현한 아야에 비해 자신이 초라하기만 한 미키오는 슬럼프에 빠진다. 아야는 그런 미키오를 응원하고 위로하지만 이는 오히려 독이 되고, 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미키오는 아야와 거리를 둠으로써 사진작가라는 목표를 추스르고 차츰 재능을 발휘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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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이 커플 참 어렵다. 미키오가 어렵사리 상승곡선을 그릴 무렵, 아야는 생각지도 않게 크게 성공해버린 자신의 현재가 막중하게 다가온 탓에 반대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주변의 기대에 짓눌려 제대로 된 곡도 써지지 않던 차 그동안 소원해진 미키오와의 관계는 미키오가 사진가로 성공함에 따라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당시 “자기만 뒤처진 것 같아 (우리 사이를) 이상하게 만들었다.”는 미키오는 아야의 꿈을 응원하지만, 아야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미키오는 아야와 대등해지고 싶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아야는 변하는 게 싫다. “내 꿈이랑 아야 씨의 꿈, 둘 다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지.”라는 미키오의 말은 아야에겐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 “이대로가 좋은데, 이대로가.”라고 되뇌는 아야에게 있어 미키오의 성공은 서로간의 거리만 벌려놓을 뿐, 정작 중요한 걸 빠뜨린 껍데기처럼 다가올 따름이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둘의 관계에 있어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코드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각자 다르다. 그것도 꽤나 이율배반적이다. 아야는 전 애인이 꿈을 버린 것과 달리 미키오가 자신의 꿈에 매달리는 모습에 매료됐다. 하지만 그가 꿈을 좇아 성공을 거머쥠으로써 사이가 소원해지자 오히려 좋았던 현재가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옛날처럼 한 방에서 함께하고 싶을 뿐이다. 또 미키오는 아야의 성공을 따라잡기 위해 사진가로서의 성공을 향해 박차를 가했지만, 정작 꿈을 이룬 다음에는 아야가 필요치 않다고, 오히려 “짐”이 된다고 생각한다. 꿈을 이룬다는 것에 담긴 미키오의 간절함은 자신의 첫 사진집 주제 또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로 택했을 만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염원한 덕분에 오히려 둘 사이는 벌어진다. “서로 민폐 끼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게 보통 아니냐? 서로 엄살떨기도 하고 받아주기도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바로 그 당연함을 둘은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야의 방 밖에서 둘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었다.



아야의 방은 둘 사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자 자연히 광범위한 의미 또한 쓸어안는 곳이 된다. 처음엔 혼자라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지만 어느새 한 사람이 없으니 새삼 침대도 넓고 방도 너무나 넓다. 원래는 혼자였던 방 안이지만 언제부턴가 혼자 남아있는 게 쓸쓸해진 것이다. 둘이 함께 있을 때는? 곧 “푸근해”진다. 또 아야의 방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고 사귀는 과정을 그대로 대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떤 영화, 어떤 배우를 좋아하는지,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지, 사진을 통해 과거엔 어떤 모습이었는지 확인하는 곳이자 서로의 꿈을 재차 확인하는 곳이다. 사실 둘이 방 안에서 하는 행동 중 특별한 건 없다. 미키오는 대부분의 시간을 신문이나 잡지를 보거나 사진 일을 하면서 보낸다. 둘이 함께 하는 행동은 밥을 먹는 것, 영화를 보는 것, 청소를 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것들이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 방 안을 가득 채운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대화 역시 특별히 의미 있는 말은 많지 않다. 일상어들로 가득 찬 그들의 대화는 어느 날이라도 상관없을 평범한 일상과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다툼 사이를 빙빙 맴돌 뿐이다.


아야의 자그마한 집은 둘이 함께하는 생활공간이면서 거의 모든 연애의 심리를 대변하는 공간이자, 둘 관계의 근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 아야의 집을 나온 미키오가 이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영영 끝나는 걸까 망설이고, 아야는 그런 미키오를 찾아가 책망하며 집으로 이끌고, 여기에 미키오는 다시 응한다. 아야의 집에서 일어나는, 때때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던 많은 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흘린 부스러기처럼 방 안 곳곳에 스며 둘의 관계를 형상화한다. 때문에 미키오가 작업실을 구해 자신의 공간을 따로 마련한 후부터 둘의 이별은 예견된 것이었다. 따라서 아야와 미키오의 마지막 순간, 미키오가 떠나고 서서히 닫히던 대문이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울 만큼 커다란 의성어로 “철커덩” 닫히는 순간보다 완벽히 이별을 표현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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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된 <내 집으로 와요>



섬세한 공간 표현과 함께 심리 묘사에 일조하는 또 하나의 수단은 미키오의 사진이다. <내 집으로 와요>가 구현하는 사진의 묘는 기술적인 면에 있지 않다. “어떤 식으로 찍었는가는 문제가 아니야. 묵묵히 보고 있으면 사진 쪽에서 모두 얘기를 해주니까 말일세.”라는 사진작가 엔도의 말이나, 미키오의 슬럼프가 곧잘 ‘뭘 찍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듯이, 사진은 예리한 표정 묘사를 통해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미묘한 속내를 정확히 포착해내는 장치로 사용된다. 미키오는 ‘산에이 포토 콘테스트’에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헤어졌던 아야와 재결합하고, 아야의 사진으로 콘테스트에 응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무리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애를 써도 만족할 만한 사진을 건져낼 수 없다. 마지막 순간 이미 출품하기로 결정된 사진 대신 마지막으로 포착해낸 아야의 사진을 콘테스트에 제출해 우승을 거머쥔다. 하지만 이 또한 예견된 이별을 스스로 직시하게 만들 뿐이다. 미키오가 제출한 사진은 아야의 미소와 미묘한 표정변화가 담긴 세 장의 연속된 사진. 여기에는 “미키오의 간절함이, 손닿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그것은 당사자가 보면 기분 나쁠 그런 사진인 것이다.


마치 갖가지 크기와 형태의 사진을 갤러리에 전시하는 듯한 대담한 컷 구성 역시 온전히 미키오와 아야의 심리에 맞닿아 있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미키오의 사진과 보다 긴밀히 결합하면서 때론 강렬하게, 때론 애잔하게 진짜 속내와 행동의 모순을 절묘하게 전시한다. “옛날처럼 그때처럼 돌아가려면 어떡해야 돼?”라는 아야의 마지막 매달림에 미키오는 그제야 결심을 굳혔다는 듯 단호히 “미안. 그만 끝내기로 해.”라고 선언한다. 이어 자신도 모르게 흐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아야의 우는 모습을 다양한 포즈와 표정이 담긴 크고 작은 연속 컷으로 묘사함으로써 심리의 흐름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 모두를 녹여낸다. 이어지는 장면, 우는 아야에게 미키오는 천천히 손을 내밀지만 차마 아야를 건드릴 수 없어 끝내 손을 접는 애잔함은 작가 하라 히데노리의, <내 집으로 와요>만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81화 최종화까지 달콤한 연애의 시작에서 개운치 못한 한 번의 이별과 재회, 완전한 헤어짐에 이르는 미키오와 아야의 동거 이야기는 세상에 수없이 널린 사랑이야기의 핵심을 정확히 관통한다. 둘의 심리는 정말로 복잡 미묘하지만, 지지부진한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다. <내 집으로 와요>는 사랑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사랑이 이러저러한 상황에 의해 의도치 않게 식는 과정을 만화라는 예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현해낸 걸작이다. 세상 모든 걸작이 그렇듯 여러 번 읽을수록 그 맛은 점점 더 진해진다. 만약 연애의 시작 혹은 끝을 겪고 있다면  맛은 더욱 농밀하게 느껴질 것이다.


<출처 :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3804#!pretty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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