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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80회 작성일 24-05-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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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寄生獣)]

이와아키 히토시(岩明均) | 코단샤(講談社) / 학산문화사


“인간에 기생하여 생물 전체의 균형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우리에 비하면…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좀먹는 기생충… 아니… 기생수다!”
   – <기생수> 7권(애장판), 히로카와 시장의 말


오늘날 <기생수>는 엄연한 고전이다. ‘환경’이나 ‘에코’ 같은 의제가 부재했던 1988년부터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이 선구적 작품의 가치는 ‘고전’의 뜻 그대로 아직까지도 전혀 감쇠하지 않고 있다. 물론 주제만 선구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소년 신이치의 성장과, 신이치와 신이치의 오른팔에 기생한 기생동물 ‘오른쪽이’와의 우정 또한 시대를 거스르며 뭉클한 설득력을 가진다. 또 인간의 몸에 기생해 목숨을 유지하면서 인간을 잡아먹는 지성체 기생수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은 어떠한가. 약하고도 이기적인 인간의 다층적 의미는 여전히 저릿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수>는 고전이다. 말인즉슨, 세대를 넘어 평가받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독자들이 다가가기에는 어려운 ‘고전’이기도 한 것이다. 유난히 여백이 많은 이와아키 히토시의 그림은 캐릭터 상품으로 활황을 누리는 여타의 ‘망가체’ 작품에 비하면 꽤나 낯설다. 게다가 기생수의 인간 사냥에 뒤따르는 다수의 고어신(gore scene) 역시 몇몇 독자들에겐 충분히 껄끄러운 요소로 작용할 법하다. 무엇보다 환경, 지구, 생태계를 비롯해 나와 타자, 인간과 세계를 아우르는 넓은 주제의식은 본의 아니게 이 작품에 ‘어려운 고전’이라는 굴레를 씌운 듯 보인다.

그러나 <기생수>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모두를 재미라는 단 하나의 가치로 응축해낸 데에 있다. 이와아키 히토시는 “그동안은 등장인물이 있고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사건을 생각하는 식이었다면, <기생수>는 우선 사건이 존재하고 이어서 그에 대처할 등장인물을 배치해갔다”며, 무엇보다 사건 중심의 ‘완결형’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중점을 뒀음을 강조했다. 덕분에 샛길로 빠지는 일 없이 촘촘히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은 단 한 순간도 늘어지지 않고 결말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일본의 평론가이자 대중문화연구가인 츠루미 슌스케는 <기생수>를 70세 때 밤을 새 단번에 읽은 작품으로 기억하며 이만큼 열중해서 본 작품이 있었나 회고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너무 ‘재미있어서’ 결말을 보지 않고는 못 견딜 걸작이 바로 <기생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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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하늘에서 테니스공 같은 생명체들이 떨어진다. 어디서 왔는지, 개체 수는 얼마나 되는지는 모조리 불명. 알에서 나온 생명체는 인간의 몸을 파고들어 뇌를 차지하고 전신을 지배한다. 그리고 인간의 머리를 차지한 순간, 이들에겐 하나의 “명령”이 내려진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거미가 집을 짓는 것처럼, 이들에겐 이 ‘종(種)’을 잡아먹어라, 즉 인간을 잡아먹으라는 ‘동족상잔’의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기생수는 모든 세포가 뇌세포나 다름없는데다 눈과 입, 촉수 등의 기능까지 겸한다. 고무 같은 신축력에 더해 날카로운 칼날이나 강철보다 단단한 외피 등으로도 자유로이 변형하며, 인간의 눈으로는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인다. 또한 높은 학습능력을 토대로 평소에는 인간의 머리 형태로 암약하며 먹이를 사냥한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누군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기생수의 존재(혹은 탄생) 의의는 분명 인간 때문이다. 자연히 이야기는 평범한 고교생 이즈미 신이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신이치는 다행히 뇌를 뺏기진 않았지만 기생수에게 오른팔을 잠식당한다. 신이치의 오른팔에 기생한 기생수 ‘오른쪽이’는 신이치에게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인간을 잡아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기생수로 남게 됐다. 그렇다고 둘의 동거가 평탄할 리 없다. 오른쪽이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신이치를 협박하기도 하고, 자신의 기원을 알기 위해 다른 기생수에게 접근하는 위험을 부러 감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생수는 단순히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다. 기생수의 이러한 다층적인 측면은 인간과 기생수의 중간에 서있는 신이치와 오른쪽이의 중간자적 시점을 통해 탁월한 동력을 얻는다. 우선 개체마다 다양한 개성을 갖고 성장하는 기생수의 존재부터가 그렇다. 신이치에게 기생한 오른쪽이는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이성적인 타입의 기생수다. 반면 ‘A’로 호명되는 기생수는 신이치와 오른쪽이를 위험인자로 파악, 신이치의 학교로 무작정 침입해 살육을 일삼는 단순 과격한 성격이다. ‘타미야 료코’는 신이치의 고등학교에 수학교사로 부임할 만큼 높은 지능을 바탕으로 인간사회에 완전히 동화, 기생수의 존재의의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전개한다. 이 중 기생수가 다양한 개성을 가지게 된 것을 ‘종(種)의 성장’으로 여기는 타미야 료코는, ‘기생수는 곧 척결해야 할 인간의 적’이라는 일차원적 접근에 선을 긋는 주역이다. 타미야 료코는 A처럼 오로지 자연의 명령에 순종하며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기생수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중간자인 신이치와 오른쪽이의 주위를 맴돈다.



인간의 몸에 침투, 뇌를 지배하는데 성공한 기생수들은 이렇게 ‘식사’를 한다.

기생수에게 심장을 직격당해 빈사상태에 빠진 신이치가 오른쪽이의 세포를 빌어 살아나면서부터 신이치의 성장은 굉장히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기생수의 세포를 받아들인 신이치는 단순히 보통 인간 이상의 시력과 청력, 운동신경을 얻은 것만이 아니다. 어떠한 위급상황에서도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은 이전 신이치에게는 없던 성향으로 기생수인 오른쪽이에 더 가까운 성질이다.

기생수의 세포를 받아들인 신이치는 때때로 짐승처럼 살기를 내뿜기도 하고, 너무나도 괴롭고 슬픈데도 웬일인지 결코 눈물만은 나오지 않는다. 타미야 료코 역시 신이치를 바라보며 ‘조금이지만 (기생수가) 섞여있다’고 말한다. 이에 신이치는 죽 고민한다. 기생수에게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의 모습을 한 기생수에게 죽을 뻔했던 경험이 그를 강인하게 한 것인지, 아니면 오른쪽이와의 세포융합으로 인해 정신구조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인지. 정말 오른손 말고는 보통 인간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신이치는 기생수와 맞서며 보통의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은 자신의 바람과 그저 생명체로서 살아가고픈 기생수의 원초적 욕구 사이에서 해답을 찾는다. 기생수와의 혈투를 거치며 해답에 접근하는 사이 신이치는 중간자적 존재에서 ‘인간’으로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이다.

성장은 신이치라는 ‘인간’의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오른쪽이가 처음 신이치의 오른팔에 기생하게 됐을 때의 목표는 신이치와의 공생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신이치와 함께 기생수와 싸워가며 인간의 이타심과 인정을 체득하면서부터는 단순한 공생관계 이상의 우정과 신의를 쌓아간다. 다섯 마리 기생수가 한 몸에 기생한 최강의 살육병기 ‘고토’와의 싸움에서 신이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던진 오른쪽이의 ‘희생’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생수로서의 절정의 ‘성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이치의) 뇌를 뺏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며 죽음을 맞는 오른쪽이에게 죽음이란 곧 “고독감”으로 다가온다. 마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인간’과 같은 감정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는 데 여념 없던 기생수 오른쪽이에게도 자리 잡은 것이다.

또 아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목숨을 내놓는 타미야 료코의 변화는 타미야 스스로도 놀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타미야는 자신이 인간의 몸으로 낳은 아기를 처음엔 그저 한 마리 실험체로 여긴다. 그는 아기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사육’한다. 그러나 그 어떤 기생수보다 인간과 생물에 대해 깊게 공부하면서 이윽고는 자신의 젖을 문 아기를 바라보며 생명의 신비와 경외심을 느낀다. 타미야가 인간의 마음을 얻은 것은 곧 번식조차 할 수 없는 반쪽짜리 생물에 불과한 기생수의 원천적 한계를 ‘모성’이라는 기생수 외의 특성으로 극복한 것이다. 게다가 타미야의 죽음은 신이치가 눈물을 되찾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신이치가 마침내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단순히 타미야가 분한 어머니의 얼굴과 마주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타미야의 희생이나 모성으로 보여지는 이종 생명체와의 완전한 교감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죽기 직전 타미야 료코가 내린 결론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과 기생생물은 하나, “우리(기생수)는 인간의 ‘자식’”이라는 그의 결론은 오로지 인간의 영속만을 바라면서도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의 위치를 되돌아보게끔 이끈다.

“다들 인간을 너무 얕보고 있군요. 분명 개체 단위로 보면 지극히 허약한 동물로 보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인간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 인간은 수십 수백… 수만 수십만이 모여 하나의 생물을 이뤄낸다는 거예요. 인간은 자신의 머리 바깥에 또 하나의 거대한 ‘뇌’를 갖고 있어요. 그걸 거슬렀을 때 우리 기생생물은 패할 거예요…”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기생수가 마침내 동 후쿠야마시에 시장을 취임시키며 조직적으로 ‘식당’을 조성하는 과정, 그리고 여기 맞서 기생수의 존재를 알아차린 인간 측의 대대적인 척결 작전의 결과는 타미야 료코의 예언과 같았다. 정치 집단을 이룬 기생수와 이를 대표하는 히로카와 시장의 최후는 긴장감 넘치는 대치상황만큼이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토가 히로카와를 향해 “당신이라면 포위망을 뚫는 것쯤 간단하겠지”라고 말한 것에 독자들은 기생수의 수장인 히로카와에게 고토 이상의 엄청난 능력을 기대했겠지만, 결과는 예상외였다. 히로카와의 정체는 비단 반전의 재미뿐만 아니라 인간이야말로 지구의 기생수라고 역설하는 그의 진의를 보다 깊게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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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평론가 츠루미 슌스케는 “끝마무리가 좋은 장편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며 <기생수> 역시 그런 작품으로 평가했다. 고토와의 결전이 펼쳐지는 결말부에서 중간자적 존재로 남은 신이치는 자신에겐 고토를 죽일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 단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생명체를 인간의 잣대로 단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꾼다. 자기 자신은 그저 가족이나 친구를 지키고 싶은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서다. 신이치의 이러한 갈등은 작품을 지배하는 반(反)인간중심주의의 진의를 단순하지만 무엇보다 명료하게 정의한다.

<기생수>의 강점은 면밀한 해부학적 지식이 발판이 됐을 인체와 기생수에 대한 탁월한 묘사에만 있지 않다. 범지구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해부하는 <기생수>의 메시지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굵직한 사건들만큼이나 묵직하다. <기생수>는 인간과 기생수의 관계를 그리며 그 어느 편의 손도 들어주지 않은 채 캐릭터 스스로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도록 이끈다. 자연히 이 과정은 독자들의 서로 다른 독서 여정과 그대로 맞닿는다. 그러나 어떤 길을 따라가더라도 종착점에는 반드시 인정이나 이타심처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강점이자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기생수>의 최종화, 쾌락살인범 우라카미는 주어진 본능에 충실해 인간을 함부로 다루는 자신만이 진짜 인간이라는 주장을 편다. 여기에 작가가 내놓은 답 역시 한없이 단순하다. 인간이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서로 의지하며 사는 존재라는 것. 인간이란 그렇게 약하고도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토록 쉽고, 명확하면서도, 깊이 있고, 재미있게 설명한 작품이기에 <기생수>는 고전인 것이다.


< 출처: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2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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