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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툰 경험의 호출과 사유의 확장 «나는 귀머거리다» 무료웹툰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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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2회 작성일 24-05-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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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머거리다» - 경험의 호출과 사유의 확장


만화는 가볍고자 하면 한없이 가벼워질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무거워지고자 하면 한없이 무거워질 수 있다. 가벼운 만화로 즉각적인 즐거움을 누리든 무거운 만화로 메시지와 내용을 음미하든 모두 만화로서 나름의 가치가 있고, 모든 만화가 가볍지 않듯 모든 만화가 무거울 필요도 없다. 그러나 어떤 만화가 ‘만화로서’가 아닌 ‘작품으로서’ 유의미하고자 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어떤 작품이 독자에게 유의미하게 남는다는 것은 곧 독자가 그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뜻이고, 자신의 경험을 반추할 수 있었다는 뜻이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내용을 효율적인 형식으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표현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독자들이 그것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이러한 ‘유의미한’ 작품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일상을 소개한다는 것은 곧 그들에 대한 구체적 인식의 내용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편 어떤 대상에 대한 거부감은 그 거부에 대한 명확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 않은 한 무지에서 오는 ‘감정’이고, 그 무지의 이유는 그 대상을 쉽게 접하기 어렵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의 일상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을 낮추고 친숙한 존재로서, 구체적 존재자로서 그 소수자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 형식에 있어서도 웹툰, 특히 일상툰의 형식을 선택함으로써 그 내용을 과밀하지 않게 하면서도 동시에 개그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부담감을 낮출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이 최규석의 «송곳»같은 방식으로 장애인의 일상과 투쟁을 리얼리즘의 형식으로 그려냈다면, 그 내용의 과밀함과 무거움으로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생길 뿐 아니라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애인이 ‘같은 세상을 사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린다는 점에서 일상툰 형식은 아주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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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의 다름은 어쩌면 그냥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귀머거리다»가 무엇보다 의미있는 점은, 작가의 경험이 독자들의 경험을 호출한다는 것이다. 각 화 댓글란을 보면, 매 화 두 세개씩은 장애인으로서 혹은 장애인을 가까운 사람으로 둔 사람으로서, 나아가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댓글이 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소수자로서의 경험이 있기에, 한 소수자의 경험은 공감을 통해 독자들의 경험을 호출하고, 그것이 다시금 다른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독특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에 살고 있었다. 외국에서, 그것도 소위 ‘백인’들의 나라에서 아시아인이 산다는 것은 스스로 소수자가 되겠다고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소수인종에 세력도 없고, 말은 잘 통하지 않아 어디서나 눈치를 보며, 업신여김과 불이익은 공기처럼 상존한다. 만일 내가 여성이었다면, 그러한 차별은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아시아계 여성은 적어도 내가 살았던 프랑스 사회에서는 가장 많은 불이익과 차별을 경험하며 산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행동을 제약한다. 수업을 들어도 반이나 이해하면 다행이고,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말에 집중해야 하고, 한 번에 한 사람과만 대화할 수 있으며, 통화는 두려운 일이 된다. 억양때문에 상대방이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어휘 때문에 내가 하고싶은 말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경험이 쌓이다보면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일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어 나를 두렵게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모든 일상적 행위에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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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내가 익숙한 환경을 떠나면 소수자가 된다.


이렇게 소수자로서 오랜 시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청각장애인이 작문을 잘한다는 것은 외국인이 한국어 작문을 잘한 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컷을 보기 전까지 나는 나의 경험과 청각장애인의 경험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타인의 일상을 웹툰을 통해 엿봄으로써 소수자로서 겪은 경험이 내 안에서 다시 한 번 호출되고, 나의 경험이 다른 소수자의 경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할 때, 나는 타인에게 공감하게 되고 타인의 문제를 조금 더 나 자신의 문제로 환원하여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이처럼 타인의 경험과 나의 경험을 이어주는 독특한 작품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독자에게 개인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를 모두 제공해주는, 그러면서도 웹툰으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은, 모든 면에서 ‘유의미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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